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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과 인내 <2008.07.26 16:37:37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7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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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7.26 16:37:37

이번 주는 힘든 주였다. 지리산 행 이후로 밀린 회의를 모두 미루었더니 하루에 몇 개씩 회의가 잡혀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Angewantechem에서는 최종적으로 reject한다고 편지가 왔다.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하라고 한다. 기가 막히다. 생트집이다. 거기다 기다리던 GRL 과제가 1차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기가 막히다. 정말 5페이지 되는 과제를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을까.... 어떻게 그런 의견을 줄 수 있을까... 올해 부족한 연구비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이번 주 내내 내리는 장대비가 내 기분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올해 들어 좋은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도 많이 분발하고 자발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좋은 저널에 내려고 하다 보니 출간이 늦어진다. 실망도 뒤따른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공동연구자들, 학생들 모두 실망이 클 것이다. 올해는 나의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분수령이라고 생각한다. 실험을 시작한지 벌써 십년이 지났고 smart aluminum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연구비도 종료되는 것이 많아 또 얻어내야 하는 부담과 좋은 논문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같이 공존하는 해이다. 이렇게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실망감이 앞서고 거기에 따른 위기감이 자칫 나를 해칠 수 있다. 연구비 프러포우절, Science, Nature 논문 등 모두 아마추어를 설득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우리 실험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반성해 본다. 우리의 어느 부분이 약점일까.
- 영어로 논문 쓰는 것. 물론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일 뿐이다. 내가 정말 좋은 science를 하고 좋은 연구결과가 있고 논리가 충분하면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가 서툴러도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사실 좋은 논문을 선택하여 같이 읽고 논문 쓰는 요령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내가 직접 교육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번부터 나도 준비하여 그룹미팅 시간에 실시해 보는 것도 우리의 안목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 데이터를 설명하는 수준. 이것은 문제일 수 있다. 사실 어떤 연구자는 개념을 그림으로 잘 설명하는 반면 어느 연구자는 좋은 연구결과라도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은 형편없다. 나는 그 중 중간정도일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 노력에 의해 개선할 수 있다. 어려운 개념은 가능한 한 그림으로 표현하고 중학생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훈련을 시켜야 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어차피 세상을 나 혼자 살지 않기 때문이다. 늘 평가를 받아야하고 그런 것을 통해 나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연구 방향. 오늘 그룹 미팅에서 연구 방향을 점검해 보았다. 우리 실험실 특성상 우리는 나노 응용 쪽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기초과학자로서 내가 속한 사회에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 논문 쓰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물론 좋은 논문을 쓰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우열을 가린다면 산업에 필요한 가치를 생산해 내는 것이 내게 있어 더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다. Science, Nature 쓰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어느 은퇴교수님 말씀처럼 은퇴 후 챙겨갈 서류목록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논문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지금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런 (Nature, Science) 논문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사회의 그런 인식 때문에 연구비를 받거나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중요하다. 그러니 현실적인 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으로는 무시하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 없이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Nature, Science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탄소나노튜브만을 연구하겠다고 고집하는 것보다 흥미로운 연구주제를 다양하게 찾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내 선택이 아니다. 목표를 현실적인 소자 타겟에 두는 것은 타당하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산업화 기술을 찾아내고 실현시키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The first or the best를 그 속에서 찾는 것이다. 사실 일일이 따져보면 우리가 다루고 있는 각자 연구 주제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모두 이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연구 주제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수행하되 중간과정에서 새로운 타개책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 개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 정리를 해야 할 필요도 느꼈다. 선택과 집중의 지혜가 필요하다.
- 나의 시간 분배. 이것은 나의 영원한 숙제이다. 사실 30여명의 연구원과 씨름하는 것만으로 난 충분히 바빠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내가 행복한 순간들이다.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제공해준다.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사실상 나를 힘들게 하는 시간들이다. 회의 시간이야 말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학교와 관련된 일들, 외부 연구과제심사, 사회봉사등 피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어떻게든지 이 시간들을 줄여야 내가 산다. 지금도 외부 사람들은 내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난 이미 포화상태다. 그래도 줄여야 한다. 적어도 당분간 그래야 한다.
하나님은 이번 시련을 통해 무엇을 나한테 원하시는지 알 수 없다. 올해 실험실 내에서 많은 일이 개선되었고 이제 모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하시는 것인가... 나의 자만을 탓하시는 것인가... 내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인가... 그래 항상 내 마음을 열어놓고 귀를 기울여 들을 것이다. 내 마음에서 말하는 소리를. 인내를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