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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일요일 <2008.06.11 09:30:30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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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6.11 09:30:30

처음 맞는 파리에서의 일요일이지만 오늘은 꽤나 분주했다. 아침 7시에 기상하여 룩셈부르크 공원을 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운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의외로 숨이 찬다. 결국 걷고 뛰고... 그렇게 한 바퀴가 15분 정도이다. 내일은 2바퀴를 돌아야겠다. 하긴 아침부터 출근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역에서 내려 학교까지 산을 올라가야하니 그것도 상당한 운동이 될 것이다. 시내에 나오게 되니 자연적으로 걷는 시간이 많아진다. 아침 새벽의 공원은 사람이 없다. 새로운 느낌이다. 처음으로 공원을 전체 돌아보니 곳곳에 예술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운동시설도 있다. 테니스장, 노인들 게이트볼 게임장, 아이들 놀이터, 곳곳의 의자들... 와서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처음으로 보는 화창한 아침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구름이 덮힌다.
호텔에서 아침 먹고 바로 디디 집을 향해 출발했다. 부인이 출장이라 부담없이 와서 바비큐하자고 한다. 여기나 한국이나 부인 눈치보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파리는 생각보다 좁은 도시이다. 자전거이면 떡을 친다. 공공 자전거 제도를 도입했으니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렇지만 나는 자전거보다는 걷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답답한 지하철보다는 그냥 도로를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다. 한국식당도 여기서 걸어서 30분 정도이다. 어젯밤도 걸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다른 통로를 택하여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블락만 다른 경로를 택해도 방향이 전혀 틀려진다. 특별히 시간에 구애받기 싫고 얽매이기 싫어 일부러 지도를 보지 않고 방향감각에만 의지하고 가니 엉뚱한 곳으로 간다. 덕분에 도시 곳곳을 세세히 볼 수 있다. 전에 가보지 못했던 많은 곳을 볼 수 있다. 빵집의 화장 진한 아가씨들의 표정도 읽을 수 있고, 음식점들의 메뉴도 눈여겨 볼 수도 있고 과일가게에 들러 체리를 살 수도 있다. 아침에는 같은 길을 선택하여 몽빠르나세 역에 도착했다. 우뚝 솟은 건물이 멀리서도 눈에 띄여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에펠탑보다 유일하게 높은 곳이라니 그 곳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전에 한번 가본 디디 집이라 이번에는 역에서 기차표를 확신하고 살 수 있었다. 학생이 준 외곽선 노선표가 도움이 되었다. 역에 도착하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려 했지만 쉬울 것 같으면서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야 연락이 되어 가보니 바로 근처까지 가서 집을 놓쳤다. 이젠 나이가 들었는지 전처럼 감각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은 모두 자고 조금 후 매튜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비비고 나와 볼에 키스를 했다. 정말 귀여운 녀석이다. 6학년치고는 덩치가 크지만 여전히 애기 티가 있다. 내가 양자 삼는다해도 그저 웃기만 한다. 디디랑 바로 근처 베르사이유로 시장을 보러 갔다. 가 보니 정말 놀라웠다. 이렇게 큰 야시장을 처음 봤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이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니고 주위의 거주자들이다. 과일 값이 많이 싸다. 한참을 주워 담았는데 20유로를 준다. 체리가 먹음직스러워 먹어보니 장말 맛이 있었다. 빠리 시내처럼 좋은 것만 있는게 아니고 썩은 것까지 같이 놓여있다. 20년을 이곳에 온다고 하니 모두 아는 사람들이었다. 가끔 농담하고 웃으며 물건을 사는 모습이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없는 것이 없었다. 생선가게, 고기가게, 치즈가게, 채소가게, 와인가게, 커피가게, 빵가게,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특별하게 나한테 보여주기 위해 들른 곳이 커피 가게였다. 세상에 커피 굽는 대형 장치가 가게 내부에 있었는데 70년이 되었단다. 이 곳에서 커피를 구울 때는 이 금방 모든 사람들이 커피 냄새에 홀린단다. 가게 안에 할아버지가 문을 닫으려했지만 우리를 보고 열어준다. 덕분에 나도 커피를 샀다. 콜롬비아, 모카를 한 봉지씩 샀다. 디디한테도 한 봉지 선물했다. 커피를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가는 방법도 다르단다. 그래서 내가 먹는 방식을 말해주었더니 안 쪽에 있는 기계를 이용하여 갈아준다. 냄새를 맡았더니 죽여준다. 정말 구수하고도 부드러운 냄새가 코를 자극하다. 할아버지는 할멈한테 늦게 들어온다 혼난다고 하면서도 밖에서 문을 두드리니 열어준다. 저울을 달 때는 완전 짠돌이다. 에누리없다. 정확히 무게를 단다. 그래도 맛있는 커피를 샀으니 호텔 방안의 냄새가 달라질 것이다.
집에 들어오니 아이들이 모두 일어났다. 제니퍼가 출장이라 아이들 말로 며칠을 제대로 못먹었다고 했다.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하나씩 일을 맡아서 했다. 아들만 셋이라 못할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다. 자비어는 고기를 굽기위해 숫불을 피우고, 데미안은 빵을 잊고 안 사와 빵사러 가고 데미안 여자친구는 정원에 있는 식탁을 준비하고 청소하고, 매튜는 부엌에서 아빠를 도와 감자를 썰고 있었다. 나도 감자를 썰며 수저도 놓고 도왔다. 모두 익숙한 솜씨다. 하긴 엄마가 출장이 많으니 모두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음식은 모두 맛이 있었다. 치즈도 여러 가지 사 왔는데 데미안이 그 중 가장 냄새 심한 것을 골라서 먹으라 한다. 냄새보다는 맛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사실 푸른 곰팡이 나는 치즈를 먹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치즈 속에 파슬리를 넣어서 일부러 썩게 만든 치즈였지만 맛이 좋았다. 처음으로 치즈 맛을 느낀 것 같다. 간이 맞아서 그런지 치즈 맛이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썩은 부분도 생각보다 역겹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 세이 모이니 역시 디디가 말한대로 끔찍한 일(?)들이 움식을 먹고 나서 벌어졌다. 막내 매튜하고 둘째 자비어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우당탕한다. 디디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말 안해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설거지를 두고 서로 미루다 싸운 것이었다. 맏이인 데미안이 중재하러 들어갔지만 조금 있다 상기된 얼굴로 나와 등을 보여주었다. 세상에 이빨자국이 크게 두 개 나 있었다. 매튜가 형한테 반항하며 문 것이었다. 이 녀석들 정말 대단하다. 결국 아빠가 들어가 교통정리를 했다. 막내가 제일 억울한 표정이었다. 눈물이 글썽인다. 아들 셋이 모이니 늘 그런다했다. 맏이는 나가서 살지만 맏이까지 모이면 더한다 했다. 하긴 아들 넷을 키우려면 그 고생이 말이 아닐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 내 어릴적 생각이 났다. 세 아들을 키우는 엄마는 우리들 때문에 부지깽이 들고 방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쳐들어왔으니 말이다. 어쨌든 즐거운 식사였다. 호텔에 들어오니 7시 정도 되었다. 오는 길을 다른 길로 오니 상당히 많이 돌아서 온 탓으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오늘은 다리 운동을 정말 많이 한 셈이다. 피곤하다. 내일부터는 또 일주가 시작이다. 알루미늄 책을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