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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조 여행 <2008.05.26 11:40:51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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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5.26 11:40:51

란조는 흥미로운 곳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며 밖을 내려봤지만 가도 가도 사막이다. 전에 미국 라스베가스 근처 데츠밸리를 연상케한다. 모래가 쌓여 언덕을 만들고 비가 와서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중국 중심부에 이렇게 큰 사막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란조는 그 곳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곳은 지리학적으로 중국의 중심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대학원생이 나와 있었다. 란조 촌답게 순진한 여학생이었다. 그렇지만 영어가 통해 편했다. 란조시 역시 공항에서 40분 운전해 가야하는 먼 곳이었다. 왜 그럴까 물어봤더니 재미있게 사막인데도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만큼 그 사이에 평지가 없단다.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맞이하는 것은 지진으로 인한 놀라움이었다. 란조에 강도 3.5 지진이 일어났단다. 호텔에 도착하니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한참을 기다리다 들어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곳은 피해가 없었고 근처 서안에 강도 7.8의 지진이 일어나 온 나라가 비상이었다. 여기도 다음날 보니 호텔 바로 앞 건물의 벽돌이 많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내가 지적했지만 모두 별일 아닌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다음날은 더 많이 떨어져 있어 결국 지진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인정했다. 그 뒤의 쌍둥이 아파트는 가운데 큰 틈이 벌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니 모두 놀라했다. 지은지 얼마 안 되는 건물이란다. 아마도 옆 도시에서 일어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어서 여기서 일어난 정도는 그저 지나갔다. 이 사막 한가운데 도시 인구가 삼백만이다. 어디나 넘쳐나는 중국의 인력이다. 란조 대학에 가 보니 대학원생 역시 넘쳐난다. 모두 열심히 실험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아직도 공부가 어느 것보다 가치있는 투자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대학원에 좋은 학생들이 진학한다. 우리 시대의 가치관과 비슷하다. 하올리 장은 젊은 교수이면서 열심히 하는 유기화학자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와서 자기 모교로 돌아온 것이다. 모든 것을 일일이 챙겨줘서 불편함이 없었다. 좋은 친구다. 전에 나도 그랬을 것을 상상해본다. 다음날 세미나에는 많은 대학원생들이 참석했다. 영어를 못해서 그런지 질문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역시 지방대의 단점인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들어난다. 하기야 북경대학이나 청화대 학생들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다만 더 부끄러워 할 뿐이다. 다음날은 란조에서 50 km 떨어진 다른 라흥 캠퍼스에 가서 나노과학에 대한 일반 강연을 했다. 여기는 사막 한가운데 학교를 세웠다. 시내에는 땅 값이 비싸 세운 대책이었다. 학부 3학년까지만 여기 있고 4학년부터는 본교가 가서 연구 생활을 시작한다. 다른 일이 없으니 공부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강의가 저녁 7시에 있었는데 학생들이 가득 찼다. 그 시간에도 다른 수업을 하는데 익숙해 있는 모양이다. 건물 앞에서는 지진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을 하고 있었다. 나도 기꺼이 거기에 참여했다. 1000엔을 했더니 하올리가 놀란다. 북경에서 돈을 받았는데 쓸 수가 없으니 더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냥 그 정도로 만족했다. 심정으로는 더라도 돕고 싶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는 국경이 없다. 서로 도와야 한다. 강의가 시작도기 전에 하올리가 소개하자 학생들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두 박수를 쳐서 영문을 몰라 했더니 내가 기부한 것을 학생들에게 말한 모양이다. 강의동안 조는 학생들이 없었다. 모두 초롱초롱했다. 끝나고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상 밖의 일이다. 질문을 30분 정도 받았다. 하올리 교수도 놀라워했다. 좋은 강의 감사하다고 여러번 말했다. 학생 하나는 나중에 나한테 내 개인 메일을 받아가기도 했다. 아마 내가 비영어권 나라에서 와서 강의해 상대적으로 두려움없이 듣고 질문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또 아마 내가 편하게 웃는 낫으로 강의하니 더 편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내가 한국에서 강의할 때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헥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아이들도 더 친근감있게 두려움없이 나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강의 효과도 훨씬 증가되고...

란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음식이다. 란조를 가기 전에도 란조의 음식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우선 내가 싫어하는 양고기 요리였다. 비록 싫어했지만 이곳은 잘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첫날은 바비큐였다. 양고기 바비큐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 요리는 놀라울 정도로 단백했다. 노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내가 군대시절 먹어본 양고기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 적절히 곁들여진 매움 맛과 간이 아주 잘 맞았다. 다른 요리들도 모두 전 입맛과 맞았다. 신기했다. 다음 날은 물에 삶은 양고기를 먹었지만 여전히 맛이 있었다. 육질이 너무 부드러웠고 간이 적절히 들어 다른 소스가 필요없었다. 다른 식당인데도 역시 다른 요리들 모두 맛이 없는 것이 없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에서의 음식맛이 이렇게 좋은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북경의 음식에 비하면 마치 전주 음식을 서울 음식에 비교하는 것과 같았다. 또 하나 맛있는 음식은 점심 때 먹은 국수였다. 여기는 요리사가 직접 빼낸 국수를 갖고 누들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했다. 정말 단백하고 맛있었다. 국수 자체는 일본 국수처럼 부드럽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씹는 투박한 맛이 있었고 국물이 일본 국수나 중국 국수의 느끼함이 없었다. 이 사람들은 적절히 간을 잘 선택하는 것 같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기술인 것이다.^^ 말하자면 기초가 튼튼한 셈이다. 모든 식당이 그런 것을 보면 이 지역은 확실히 맛으로 유명한 것이 실감난다. 호텔의 아침은 질이 훨씬 떨어지지만 북경의 아침과 비교할 수 없다. 재료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다음날은 근처 티베트 사원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여행 가이드가 한사람 붙었고 학교에서 차를 기사와 함께 내 주었다. 중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처라 하지만 4시간을 운전해서 가는 거리였다. 가는 동안 여전히 사막이었고 중간 중간 도시가 있었다. 여행 가이드는 나보다 약간 어린 나이가 든 사람이었지만 영어를 잘했다. 3개국어를 잘한다고 했고 영어는 3년 전에 배웠다고 했다. 그런 것치고는 영어 발음이 정확했고 어휘능력도 상당했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달려가 텔레비전에서는 봤던 그런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황색 라마에 속했다. 말하자면 달라이 라마의 종파에 속해 있는 곳이다. 다른 곳은 분쟁에 휩싸여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고 이 곳만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원 전체가 평화로웠고 몇몇의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곳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사원 향불 냄새는 싫지 않았지만 촛불을 태우는 기름냄새는 역겨워 사원 내에 오해 있기가 힘들었다. 이곳 승려는 모두 일을 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동자승들도 많았다. 그 시간이 마침 염불시간이라 모든 승려들이 모여 염불하고 있었지만 몇몇 어린 동자승들은 염불에는 아랑곳없이 모여든 관광객에 끝없이 눈길을 주고 있다. 하긴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을 느낄까 싶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그들은 어렸을 때 본인이 원해서 들어온단다. 일단 들어오면 평생 그렇게 있어야한다. 가족들은 그런 것을 아주 영광스럽게 여기고 또 그 친구가 죽을 때까지 계속 경제적으로 지원을 한단다. 이 부분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지만 승려가 되는 것이 우리의 대학 가는 정도에 해당한다 해서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이들의 수입이 그런 가족들과 일반인들의 시중에 의존한다 하니 생활자체가 아주 가난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도 계급이 분명히 존재했고 기거하는 집들도 규모나 장식면에서 차이가 많았다. 또 일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마치 옛 우리 사회의 귀족과 천민을 연상케하는 사회 구조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가 주도하는 독립보다는 지금처럼 살기를 원한단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해석이지만 일리가 있기는 하다. 종교심이 강한 티베트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제도 혹은 육체적인 자유보다는 정신적인 자유를 더 원할테니까 어느 형태든 관계없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가 원하는 독립은 너무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언론에서 소개된 달라이라마에 대한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내가 티베트인이라면 나는 귀족제도를 반대할 것이다. 내가 달라이라마라면 더 이상 큰 희생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유지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원에서 예배드리는 어떤 여인 하나가 우리를 보고 잠시 쉬면서 나를 보고 신기해하며 가이드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아마도 작들과 비슷해 물어본 것 같다.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자기들과 너무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구나 내가 몽고인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나보고도 절해보라고 하면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내 얼굴은 중국인이나 이곳 삶들 모두에게 낫설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아무말하지 않고 있으면 이들도 모두 알아채지 못한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보이지 그리 싫지는 않다. 사실 살면서 우리는 생활에 찌들고 얼굴에 짜증이 묻어난다. 다른 사람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얼굴을 갖기가 그리 쉽지 않다. 내가 그리 살지 않는 한 말이다. 내 인생의 주름살이 더해지면서 나는 어떤 얼굴로 변할까 젊을 때는 정말 화내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냥 화나면 화내며 살기로 했다. 그래서 내 얼굴에 주름살이 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내 얼굴이 다른 사람한테 거리감있게 변하는 것은 싫다. 어차피 어울려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늘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얼굴이면 더 좋을 것이다. 내 삶의 패턴으로 봐서는 큰 바위 얼굴이 되기는 틀린 것 같다. 그래도 좋다, 더 많이 부딪히며 더 많이 느끼고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차피 편하게 살기를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부처님 얼굴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