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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회 <2008.05.01 22:44:26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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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5.01 22:44:26



우리 사회는 각종 인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다. 물론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살다보니 과학사회에서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무엇이든 사람이 중심이다 보니 이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맥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를 나쁘게 이용하는 경우 나쁜 결과가 오지만) 우리 사람살이를 따뜻한 정으로 만드는 좋은 활력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익숙지 않아 동문회는 10년에 한번 정도 가는 것 같다. 모처럼 가보면 내가 나이를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요즈음은 벌써 아이들 결혼식에 초대를 받고 동창들을 자주 보게 된다. 세월이 무상하다.

어제는 일요일 오후 모임이 있었다. 일요일 오후에 대부분 집에서 쉬는 시간을 잡았으니 별 핑계도 없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후배가 나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아주 인상 깊은 모임이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고이고 또 국립학교여서 당시에 학비가 없어 가난한 학생들이 주로 오는 학교였다. 그래서 서울에 소재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그러나 졸업후 역에서의 열악한 환경, 공무원의 미래에 대한 비젼등의 문제로 대부분 공무원을 그만두고 딴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이었다. 그래서 국립학교의 원래 특징이 사라지게 되고 정부에서 강제로 학교를 없애버렸다. 지금은 학교가 없어져서 그런지 아쉬운 마음 때문에 동문들의 모임이 자주 있나보다. 또 선후배의 관계도 다른 학교에 비해 끈끈하다.

대부분의 동문회는 반가움, 그리움, 그리고 세월에 대한 무상함 그런 마음들이 교차하지만 어제는 느낌이 달랐다. 과기부에 오랫동안 몸 담았던 선배한테 인사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후배라고 몇 되지않는 교수 중의 한명인데 한번도 인사를 드리지 못했으니 속으로 괘씸하다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 보는 후배를 반갑게 맞아주니 고마웠다. 나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본인도 그냥 모른채 하신 것이다. 하기야 그렇게 하셨으니 고급공무원을 오래 하셨을 것이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후배들을 격려하는 모습에서 삶의 여유로움이 몸에 배어 있다. 사실 이제까지 나도 앞만 보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고 이런 부분에서 늘 아쉬움이 있다. 물론 난 이런 모든 것과의 타협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리를 가면 다른 사람들이 갖는 그런 선후배 관계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살면서 이런 것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는데 말이다.

내가 5회이니 나도 고참에 속했다. 후배들이라고 해도 모두 40,50대 초반이니 다들 사회에서는 회사 사장, 중역등 중진들이지만 어제만큼은 선배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도 아무도 청승맞다 하지 않는다. 각자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모습들이 역력하다.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자기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들, 애착등이 강하게 보인다. 다른 학교와 달리 동문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도움이 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그런 모습에서 새삼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대학교수는 그들의 삶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들을 도울 힘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그 자리에 초대한 것은 대학교수라는 이름 하나로 그랬을 것이다. 내가 주어진 자리에서 그나마 열심히 일한 땃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서의 긍정적인 태도가 나의 맘에 와 닿았다. 사실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는 순탄치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인생의 성공한 삶으로 말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성공적인 삶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주어진 삶에서 그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인 것이다.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나의 삶도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나의 삶이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을 어떻게 보느냐이다. 스스로에 대해 더욱 철저해져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임이었다. 모임에 갈 때는 별로 내키지 않았었지만 가보니 오히려 나 스스로 겸손해지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좋은 후배들을 두었다는 자부심도 함께.... 아마 더 세월이 지나 내 학생들이 모두 사회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들을 볼 때 이런 느낌들이 아닐까.. 그 때 백발이 되어 내 학생들을 만나 와인 한잔하며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내 입가에 피어나는 잔잔한 웃음을 생각하면 인생은 신명나는 한판의 굿이다. 살맛나는 곳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