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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떤 길을 선택할까 <2008.05.01 22:43:48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4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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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5.01 22:43:48


오늘은 오후 되어서야 마음을 평정을 찾았다. 아마도 지루하게 싸웠던 중요한 몇 개의 논문들이 마무리가 된 것에 대한 안도감, 어제의 사고에 대한 내 마음의 번민과 학생들에 대한 나의 반응에 대한 스스로의 실망감, 자괴감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 대한 반성들이 나를 차분하게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찾아든 차분함이 나를 잠시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

어젯밤 이산 연속극을 보면서 권력자의 보편적인 행태가 권력의 맛에 취하여 늘 쉬운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 길이 파멸의 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그렇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내 앞에 쉬운 옆 길이 있고 그 길로 가도 되는데 굳이 원칙을 지켜가며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왕을 위해 충성하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홍국영이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쉬운 길을 선택하려 한다. 스스로가 권력이 생길 때는 그 길이 불의의 길이라 생각하지 않고 또 보이는 쉬운 길을 선택한다. 그런 홍국영에 비해 왕은 오히려 자기 정적을 좌의정에 앉히고 힘들게 그의 비판을 듣고 올바름으로 국면을 타개하려 한다.

나는 작게는 우리 실험실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실험실이 전 세계가 놀라는 일을 했을 때는 더 이상 작은 실험실이 아니다. 내 세계가 곧 세상인 것이다. 또 우리 실험실은 작은 크기가 아니어서 실험실 내애 여러 가지 문제가 항상 있어 왔다. 실험실 내의 안전 사고는 그 중 우리를 발목잡는 문제 중의 하나였다. 그동안 큰 사고가 몇 번 있었고 불행중 다행으로 큰 인재 사고는 없었다. 어제의 사고도 그 중 하나였지만 잘못하면 큰 사고로 번질 수도 있는 인재 사고여서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더구나 짜증 난 것은 사고의 종류가 안전 수칙만 지켰어도 피할 수 있는 사고였다. 결국 내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실험실 짱한테 큰 소릴 치게 되고 당사자에게는 무시하는 발언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내 자신이 형편없이 느껴져 종일 논문이 쓰여지질 않고 우울했다. 저녁에는 모두를 모아놓고 안전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짜증나는 것을 참아가며 겨우 이야기할 수 있었지 결국은 집에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이산을 보면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홍국영이 누구인가 그렇게 충신이었던 자가 비뚤어진다. 쉬운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난 이번 일도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나의 자만이 있지 않았는가 하고 반성했다. 이런 안전 사고는 늘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나는 이런 것에 대비해 늘 교육을 시켰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고 사고가 나서 짜증내고 화를 내는 것은 나 또한 쉬운 길을 가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전사고는 몰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반복적인 교육이 없어 인식이 안 되고 방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짜증내는 것은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나의 안이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또 Nature Nanotechnology에서 reject의 편지가 왔다. 짜증이 더해진 순간이었지만 이 역시 나의 안이한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나의 오만함, 서양인들의 차별이라는 되지도 않는 핑계, 이 모든 것들이 쉽게 가려는 나의 안이함 때문에 오는 것이다. 냉정히 보면 이 논문은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새로운 과학이거나 technical breakthrough가 적었다. doping 할 수 있는 새로운 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들이 비록 아마추어지만 그들의 관점도 무시할 수 없다. 더 나은 것을 향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이 산을 넘을 수 없다. 아직도 우리는 이산을 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조의 의지처럼 나도 결코 쉬운 길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가다보면 합리적인 길을 갈 것이고 또 하루 하루 나아진 길들을 쌓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 인생이 될 것이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그것이 내 하나님과 나 사이의 영원한 싸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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