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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격렬하고 <2008.05.01 22:41:40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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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5.01 22:41:40


누군가 희망은 격렬하고 삶은 지루하다고 했다. 아마 계획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 새로운 계획을 짜고 미래를 그리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흥분된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린 많은 생각을 한다.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 그 목표를 어떤 방법으로 달성할 것인가, 어떤 어려움이 예상될까, 필요한 실험 장비는 무엇인가, 누가 이 일을 해야 할까, 어떻게 실험실 내에서 서로 협조하여 최대의 효율을 올릴 수 있을까, 그 목표를 달성할 때 기대치는 무엇인가, 그렇게 많은 생각으로 가상적인 결과를 그림에 그린다. 말하자면 덧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많은 경우 결과가 가져다주는 기대감 때문에 흥분한다. 사실 그런 기대감이 없으면 연구하기 힘들다. 이 때의 느낌은 그야말로 격렬하다. 격렬하지 않으면 연구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논문의 수를 늘이는 연구라면 하지 않는 것이 삶의 효율을 올리는 방법이다. 내가 젊었을 때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효율적인 연구 성과를 올렸을 지 모른다. 하기야 그것은 가정일 뿐 실제 젊었을 때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더라면 지금 난 힘들어서 더 빨리 노쇄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가정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과도 같은....

그렇듯 격렬한 희망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어도 실행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처음 시작하는 연구의 경우 모든 것이 새롭다. 나야 연구 경험이 많다고 해서 좀 낫겠지만 대학원생들한테는 사실 모든 것이 새롭다. 쉬운 것도 처음하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관련 논문부터 읽기 시작하여 그동안 진행되어 온 주위 연구결과를 먼저 살펴본다. 사실 내가 처음 생각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은 것들이 이미 논문에 나와 있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경우 많이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만의 새로운 생각이 무엇이고 또 필요한 경우 목표를 수정하게 된다. 그러면 생각도 깊이를 더하고 접근 방법도 구체적이게 된다. 덧 림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고 나면 실험 방법을 설계한다. 여기는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한 부분이다. 실험장비가 내 실험에 필요하게 setting이 되어 있는가를 점검하고 거기에 관련된 재료를 준비한다. 이 경우 운이 나쁘면 재료 구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장비를 새로 구입하는 경우에는 몇 달도 기다려야 한다. 그야말로 지루함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 기간동안 대게는 논문을 많이 읽고 힘을 비축하는 기간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여 엔진을 풀 파워로 올리기 전 모든 준비를 끝내는 시간이다. 그렇게 실험 준비가 되면 드디어 실험을 시작한다. 때로는 결과가 예상하지 않은 쪽으로 얻어지면 그 결과를 재연하기 위해 반복실험을 계속한다. 이 과정은 그나마 좀 재미있는 과정이다. 때로는 결과에 흥분하고 잠도 설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데이터를 면밀히 검토하고 스스로 논리의 반대입장에 서서 자기 데이터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의 허점이 무엇인가, 왜 다른 사람의 결과와 다른가, 내 실험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인가. 이 때 실험결과가 재연이 안 되거나 오차가 너무 크면 데이터를 자기 마음대로 선별하여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논리가 틀림에도 불구하고 그 데이터를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생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자의 정직성이다. 스스로를 확신시키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확신시킬 수 없다. 스스로를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재연성, 오차등 많은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데이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또 다른 실험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시간을 많이 요구한다. 그래서 지루하다. 그렇게 일련의 데이터가 나오면 논문을 쓰게 된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자기의 논리 전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이다. 사실 이 과정동안 그동안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다시 나온다. 실험을 치밀하게 논리에 따라 전개를 잘하면 상대적으로 논문이 쉽게 쓰여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논문을 쓰다가 다시 점검 실험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 과정동안 논리의 전개가 완성된다. 그래서 논문이라는 것을 반드시 써야 한다. 어떤 사람은 논문을 진짜 좋은 논문만 쓰려한다. 그래서 논문 쓰지 않는 것을 합리화 시키기도 하지만 논문을 쓰는 치열한 훈련없이 어느 날 갑자기 좋은 논문이 쓰여지지 않는다. 작은 실험 하나하나가 모두 논리 훈련을 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적어도 학생들에게는...

대학원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마음 가짐은 그야말로 희망으로 격렬하게 따 오를 것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각오를 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대학원을 들어온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에서 회의가 생기고 희망이 꺾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회의는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는 악마의 유혹이다. 모든 사람은 능력의 한계를 갖고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당연히 모르는 것이 많고 교수가 요구하는 것은 많으니 이런 회의가 생길 수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에 차라리 작은 계획 하나 하나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다. 대학원의 생활은 절제의 생활이다. 학부 때처럼 그렇게 모든 친구들 만나고 모든 사회생활에 관여할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성취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다. 특히 우리 사회같이 비 효율적인 사회에서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가족 생일, 친구 생일, 돌 잔치, 결혼식, 장례식, 끝이 없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어느 정도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대학원 생활이고 아마 이 기간 동안은 친구나 가족들도 이해해 줄 것이다. 절제와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다.

희망은 격렬하고 삶은 인내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희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내하고 지루함을 이겨내야 한다. 지루함을 이기는 방법은 계획을 멀리 잡지 말고 하루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날 그날 실천하는 길이다. 알루미늄 개발하면서 더욱 느끼는 부분이다. 회사 관계자는 장기 계획에 격렬한 희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현하는 길은 시간이 필요하다.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우리로서는 하나하나 데이터를 고민하고 재연해야하는 지루함이 아닌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노력 없이는 희망도 허망한 꿈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모두 힘내자! 우리의 진짜 꿈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