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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한다는 것 <2008.05.01 21:57:01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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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5.01 21:57:01

요즈음은 하루 하루 긴장의 연속이다. 알루미늄 연구가 발표 일을 정해놓고 매일 매일 계획대로 진행되는 가를 점검하기 때문이다. 연구란 것이 잘 될 때도 있지만 잘 되지 않은 때가 더 많은 게 연구의 본질이다. 다 되는 것을 하는 것은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회사 과제는 주어진 시간 내에 결과를 내야 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결과를 반드시 내야하는 이 스트레스를 버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삼성가전의 과제가 무척 고민스러운 것도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분야이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과제는 몇 개월 단위다. 회사는 일 년이면 충분하고 그 기간동안 우리가 성실하지 못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질책한다. 많은 경우 그들은 우리 실험실의 능력을 인정한다. 그런 만큼 요구하는 기대치도 크다. 그러나 학생들이나 연구원은 수시로 변한다. 이것이 어려운 점이다.

지난 일 년동안 너무 힘들었다. 이 과제는 여러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데 모두 성격이 다양하여 서로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협동이 안 되는 것이 일이 더딘 요인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게 대학 실험실인 것이다. 이제는 몇 가지로 문제가 요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답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2차년도 과제 달성이 불확실하다. 다시 하자고 해도 두렵다. 몇 가지 문제로 요약되었다 해도 여전히 내부 협력이 어려울 것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회사는 여전히 결과를 가지고 우리를 질책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이런 오만한 태도를 꺾고 싶은 오기도 생긴다. 그래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지만 송박사나 나의 어깨가 무겁다. 몇 개월 내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실험실 내부의 협조가 이 과제의 관건이다.

알루미늄 복합소재의 경우 다행히 팔부능선은 넘었다. 모두 밤을 새며 일한 덕분이다. 회사 사람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기계가 수시로 고장나고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며 기다리는 시간으로는 도저히 우리가 계획한 것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런데 회사 사람들은 놀랍다. 전문가들을 비상으로 소집하고 밤을 세워 고친다. 우리는 마냥 고쳐줄 때까지 기다린다. 대학 실험실과 회사의 다른 점이다. 이번 일을 여기까지 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회사가 우리를 믿고 기다려준 것이 우리한테는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회사일이 아닌 내일처럼 고민하고 일할 수 있었다.

정말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겼을까.... 1년 반 동안 헤매였다. 어느 방법도 알루미늄과 나노튜브를 섞을 수 없었다. 그동안 시도해 본 방법들 모두 금속 전문가들이 시도해 온 방법들이었다. 어느 것은 학문적으로는 가능했지만 대량 생산에는 가능하지 않아 포기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던가. 덕분에 우린 참으로 금속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정말 힘들었던 것은 이런 실패가 아니고 소위 금속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할 때마다 모두 이 기술은 안 된다고 말할 때였다. 그 때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끝까지 해보자. 남들이 다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거꾸로 이 기술이 안 된다기 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은) 힘들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진행시키지 못했으니 오히려 성공하면 회사로서는 안심하고 진행시킬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진행되어온 논문이나 특허도 모두 이 복합체의 본질을 다루지는 못했다. 덕분에 이 기술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밀도의 차이, 표면장력의 차이, 산화력의 차이가 두 물질이 섞이는 것을 어렵게 했다. 사실 이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복합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경우의 해결책은 물론 두 물질 사이의 공유 결합을 시키는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공유결합을 형성시키느냐이었다. 그 사이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갔고 결국은 몇 사람만 남았다. 그래서 연구가 어렵다. 될 것 같으면 모두 열심히 하지만 어렵다 느끼면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연구란 것은 머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끈기와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며 드디어 공유결합을 형성할 수 있었다. 어느 방법은 고 부가가치를 얻는 방법으로 아주 유용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하는 값싼 제조공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근에야 결국 값싼 제조공정 방법으로 공유결합이라는 것을 형성할 수 있었는데 이는 순전히 강표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고도 결국 섞이느냐는 또 다른 고민이었다. 이 방법도 결국 찾았지만 최근 몇 달동안 우리는 천당과 지옥을 몇 번씩 오갔다. 마치 지리산 등반시 이 능성이만 오르면 끝일거라고 생각하여 오르면 또 다른 능성이가 앞에 있는 것과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동안 우린 정말 재미있는 몇 가지 연구 결과를 얻었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차근히 조사해 봐야 할 문제다. 좋은 논문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몇 가지 공정은 특허로도 발표해야 할 지 아닐지 고민스럽다. 발표하는 순간 기술은 공개된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논문을 발표하고 싶은 유혹이 있다. 그러나 회사의 이득관계도 중요하다.

이제 이번 주면 기술발표회가 있다.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지 고민할 때다. 적게 공개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어렵다고 믿는 기술이니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모두 공개할 수도 없다. 지혜가 필요하다. 이번 발표는 다만 우리의 다짐이다. 이 발표가 기술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이제 우린 첫발을 디뎠다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이 기술을 완성시켜 작게는 회사가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의지이고 크게는 새로운 소재를 창출하여 국가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일로 우리 스스로의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고 이 일에 더욱 매진하게 될 것이다. 연극으로 말하면 일 막이 끝난 것이다. 다음 이 막 삼 막이 있고 결론도 있을 것이다. 차분히 가는 일만 남았다.

이 일을 하면 얻은 교훈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남의 일을 판단할 때 보통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결정하거나 판단한다. 어떤 경우건 실패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안된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어렵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현명한 대답일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로서 아마도 이런 태도가 더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나보다 나은 어떤 사람은 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러기를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