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난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광할한 우주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의 존재가 무슨 의미일까...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산다는 것 자체가 이리도 모순 덩어리인데 논리라는 것 또한 무슨 의미인지.. 합리적으로 산다는 것, 정의롭게 산다는 것 무슨 의미인지...하나님의 존재는 또한 무슨 의미일까... 어차피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계속되고, 모든 조직적인 폭력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계속 일어나고,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일 또한 계속되는데, 평화는 허구속에 존재하고,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사람살이가 근본적으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이 없고 인류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에 대한 대답은 모두 허구이다.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것에 데한 답으로 대신하고 또 그렇게 살려고 하지만 그것조차 인간의 삶은 모순 투성이다. 살면 살수록 세상은 모순 투성이로 가득찬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그런 인간의 모순된 행위가 이제는 눈에 더욱 투명하게 비쳐온다. 이래서 나이든 것인가..
아니 어쩌면 난 아직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처음부터 인간은 모순적이고, 처음부터 악하고, 폭력적이고, 위선적이고, 틈만 나면 게을러지는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서 오는 자기 당착 아닐까. 자그마한 가정에서조차 난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사회 관습에 얽매어 그냥 마지못해 사는 가축동물처럼 그렇게 사육당하고 있다.
눈이 부시도록 붉은 단풍이 펼쳐져 있는 이 가을 난 마음이 우울하다. 외로움일까.. 쓸쓸함일까..아니면 인간에 대한 실망함일까 배신감일까...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더욱 클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의 행동은 어쩌면 곧 나의 행동에 대한 거울이다. 내 학생들이 열심히 연구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내가 전처럼 연구에 매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는 주말이면 의례껏 학교에 나왔었고 또 학생들도 수시로 학교에 나와서 실험했었다. 몸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핑계일 것이다. 정신이 헤이해진 결과일 것이다. 학생들도 지원에 대한 염려가 사라지니 전처럼 잘 해야된다는 절박함이 없어졌을 것이다. 그런 반면 옆방 김 교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주말에도 나와 일한다.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의 그들에게는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이미 사라진 모습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한테서 그런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도 내가 가족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무엇인가를 구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안되면 그냥 포기하고 말아버린다. 서로 부딪히기 싫기 때문이다. 아마도 더 이상 구차해지기 싫어서이겠지만 이것은 가장 가까운 인관간계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내 학생들을 포기했을까. 아니 이렇게 하려면 모두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렇게 많은 연구비를 동기도 부족한 집단에게 주는 것은 세금낭비다.
하나님은 날 포기했을까. 베드로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는 말이 피부로 온다. 난 어디로 가고 있을까. IBS 단장이 된 순간 난 아직도 하나님이 나한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것에 대한 나의 역할, 하나님은 날 어디에 쓰려고 하실까... 아직도 모르겠다. 아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가능이나 한 걸까.. 이 우울함이 날 먹어버릴 것 같다.. Quo vad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