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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부모한테 짜증내본 적 있어?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5-10-27
  • 조회수7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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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에 나오면서 아들이 밤늦게 공부한 것 같아 물어보니 발표가 있단다. 위로한답시고 ‘그런 준비는 미리부터 해야지’ 하고 말하고 나서 순간 아차하고 후회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공부할 시간이 없잖아’ 하고 버럭 짜증낸다. 한번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냥 침묵 이외는 답이 없다.

경험이 많은 나도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젊을 때나 지금이나 그리 편치 않다. 심하면 입 안이 헐어 말하기도 힘들다. 콘디션이 안 좋을 때는 머리도 지끈 지끈 아프다. 그 만큼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맨날 하는데도 그러니 촛자가 수업에서라도 발표하는 것은 참으로 긴장되는 일이다. 아침에도 중얼거리는 것을 보면 상당히 긴장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핀잔스럽게 이야기했으니 짜증이 날만도 하다.

사람이 말하라고 입을 가졌으면서도 그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게 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아니 천성적으로 타고난 사람도 있기는 하다.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눈에 거슬리면 꼭 느낀대로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런 말은 보통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욱하고 성질도 잘 낸다. 한 때는 내가 살기 위해 마음에 눌린 말을 담지 않기 위해 그냥 뱉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이라면 그것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 내가 자유롭되 다른 사람은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가 참으로 어렵다. 특히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만큼 그러기가 더욱 쉽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이들어 말이 줄어든 것일까... 아마 나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말을 적세 하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길이다.

왜 사람들은 가족에게 더 잘못할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제일 잘해야 하는 것이 이치인데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더욱 화를 내고 더욱 짜증을 낸다. 때로는 원수처럼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딸이 사춘기 때에 엄마한테 대드는 것은 정말 원수보다 더 심하게 보여 내가 개입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라고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 식구들한데 가장 따뜻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아들한테 고생한다고 그냥 단순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저녁을 학생들하고 먹으면서 물어봤다. 부모한테 짜증낸 적 있냐고... 모두 질문이 의외란 듯 표정이다. 당연히 낸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세대 차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우리 때는 부모한테 짜증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억을 더듬어도 부모한테 짜증낸 기억이 없다. 사춘기도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짜증을 낼 만큼 사는 것이 여유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가 우리의 짜증을 들어줄만큼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였지 그 외의 것은 모두 사소한 일이었다. 늘 쌀독이 비어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런 쌀독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안절부절했을까. 아니면 내가 기억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내개 짜증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지금의 세대의 기준으로 보면...

그러나 역시 나는 구 세대. 나는 감히 엄마한테 짜증내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젊었을 때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부모를 모시고 5남매를 키운 엄마를 생각하면 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그 앞에서는 논리가 없다. 난 그런 엄마가 너무 고맙다. 지금 같으면 가출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족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면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지만 결국 엄마가 원하는 대로 따른다. 그게 내 방식이다. 모든 논리를 넘어서 엄마가 편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하하 요즘 세대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한심한 노인네의 실없는 소리라고 일축할 것이다. 그래도 난 내 방식대로 살 것이다. 고집스런 구닥다리 내 방식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