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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5-10-25
  • 조회수7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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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앞 음식점 중 매콤한 맛이 당길 때는 춘천 닭갈비라는 곳에 간다.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점이 쉬이 사라지는 추세에 비하면 15년 이상 장수하는 곳이니 나로서는 감사하기 그지없다. 분위기도 학생들이 좋아하는 곳이어서 학생들하고 자주 가는 곳이다.

얼마 전 KBS장영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이 학생들과 음식점에 간 적이 있다. 주인집 할머니 왈, ‘어 TV보다보니 우리 집에 자주 오는 노숙자가 TV에 나와 깜짝 놀랐어’. 이 말에 모두 빵 뒤집어졌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교수가 노숙자라 했으니 놀랐고 나는 그런 할머니의 표현이 재미있어 웃었다. 옆에서 고기 뒤집는 할머니에게 내가 항의쪼로 웃으며 ‘아니 노숙자가 돈 내는 것 봤어요? 내가 항상 돈 내잖아요~~’, 할머니가 미안한지 ‘아니 그래 그래 미안해’ 하신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미안해하는 표정이 아니다. 할머니의 농담에 모두 즐거웠다.

생각해보니 내 별명이 여러 가지였다. 초등학교 때는 얼굴에 주근깨가 많이 나서 아이들이 ‘깨죽이’라고 놀렸다. 이 별명은 내가 못생겨서 그런지 무척 듣기 싫은 별명이었다. 엄마도 그런 아들이 가여워 주근깨 원인을 한약방에 물어봤더니 그 당시 쌀 한가마가 들어야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포기했단다. 가난한 집안에서 쌀 한가마를 나를 위해 쓴다는 것을 엄두를 못낸 것이다.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그것은 사치였던 것이다. 대학 때부터 길렀던 콧수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코털이라 부르기도 했다.교수가 되어 학생들이 부르는 별명이 산적이었다. 아마도 생김새가 산적 같으니 무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생김새가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 별명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촌놈이고 새카맣게 그으른 얼굴이 내 몰골이니 별명이 많을 법하다. 시골사람처럼 광대뼈도 크고 덩치도 한 덩치 하니 절대로 곱상한 별명이 붙을 리 없다. 또 나는 힘을 쓰기를 좋아한다. 운동도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고 모험하기를 좋아한다. 절대로 서울의 곱상한 도련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나 산적이든 코털이든 그리 싫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나를 대변해주고 있는 말이니 말이다. 가끔은 내가 산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니 자유 분방한 내 내부를 보면 전생에 내 직업이 산적이니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아니 지금도 산적처럼 살았으면 생각해본다.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갈취하겠지만 부자들 돈 갈취해 가난한 사람들 나눠주는 활빈당 같은 산적들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법을 어긴다 하더라도....

살면서 원하지 않은데도 내가 살고 있는 울타리에 내가 갇힌다. 내가 속한 사회의 규범이 나의 행동을 제한하고 나의 생각을 제한한다. 교수니까 교수다운 품위를 유지해야하고 교수답게 행동해야한다. 그러나 나는 체질적으로 이런 것이 싫다. 과학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워야한다. 내 사고가 제한되는 것이 죽도록 싫다. 모두가 예라고 얘기할 때 난 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생각의 폭이 있어야 한다. 얼마전 고교 동창회에 나갔었는데 모처럼 만난 친구가 이젠 교수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느새 나도 교수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나... 교수가 교수다워지면 모든 사람이 원하는대로 행동할지 모르지만 학생은 교수라 경원한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그리 가깝게 설 대상의 사람이 아니다. 학생과의 대화에서도 나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장점이 하나도 없다. 내가 교수가 되자 작은 아버지는 나보고 이제 교수도 되었으니까 수염도 깍지 하셨다. 또 양복도 입어야지... 말하자면 교수가 같은 겉모습대로 살라고 하신 것이다. 또 콧수염이 내 매너리즘이 될까 봐 가끔 깎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이 싫어한다. 하기야 태어날 때부터 나를 그렇게 보아왔으니 아빠이기에는 생소한 모습일 것이다.

노숙자란 표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첫째 교수처럼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고 아직도 나의 촌놈다운 행보가 느껴지는 말이라서 좋다. 노숙자같은 교수라니 이 얼마나 멋있는 모습인가. 모든 학생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노숙자 대하듯 편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진정으로 진리만을 논하는 과학자이지 않을까. 아무 선입견없이...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겉모습일 뿐... 이런 겉모습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장영실 쇼에 나올 때 입은 핑크옷이 너무 강렬하여 모두 사람들이 옷만 말한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런 것들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나는 나일뿐... 내가 메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면 된다. 춘천 닭갈비 집에서 밥을 먹고 카운터에서 돈을 내며 내가 또 짓궂게 ‘봐요 제가 또 돈내잖아요~~’, 할머니 왈, ‘그래 그래 미안해 그 말 취소할게’ 내가 속으로 어 내가 너무 심했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돌아 나오는 내 뒤에 들리는 소리, ‘그래도 노숙자 같잖아’... 모두 프하하. 할머니의 진실성이 세월을 넘어 이탈리아 저 너머 갈릴레이로부터 여기까지 왔는가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 이후로 그 집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