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출장 후 돌아온 날 출근은 밀린 일로 인해 정신이 없다. 오늘도 출근해 정신없이 밀린 일하다 보니 벌써 5시가 되었다. 이제 점심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특별히 배고프지도 않다. 때로는 일이 밀려있어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짜증을 낸다. 학생들한테 출장 이후 첫날은 찾아오지 말라고 한 이후로는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다음날은 피곤한 날이다.
오늘은 한글날이고 금요일이라 그런지 모두 나오지 않았다. 비상화재 방송이 있어 나가보았더니 그래도 다른 층에서 많은 학생들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방 학생들은 외국인 학생들 몇 명이다. 한국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전에도 그랬을까...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학생일수록 더 열심히 한다. 우리가 공부할 때는 해야 했기 때문에 한 것이지 꼭 동기가 있어서 한 것은 아니었다. 동기라기보다는 내가 공부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 비해 비교적 잘 한다 생각했고 또 가진 것이 없는 나로서는 그것 이외의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는 외국 유학이 지름길이었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학위는 해야했다. 내가 내 일을 즐기기 된 것은 훨씬 그 이후의 일이다.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다르다. 우선 내 아들부터도 연구라는 것을 해보기로 마음먹는데 10년이 걸렸다. 동기라는 것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이다. 하다보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는다. 이해는 가지만 만약 우리처럼 선택권이 없었다면 그러지 못할 것이다.
우리 실험실이 IBS가 되어 많은 것이 주어졌다. 지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연구만 몰두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다. 전에는 휴일에도 나와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실험실 조건이 더 좋아졌으니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연구결과를 남보다 더 빨리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평일에 다른 사람이 쓰기 때문에 장비를 더 사 달라고 한다. 주말에 쓰면 방해받지 않고 쓸 수 있는데 그러기는 싫은 것이다. 주말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쉬어야한다. 토요일, 일요일 나와서 일하다보면 눈에 띄는 학생이 있으련만 그러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탓하면 난 또 구닥다리가 될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는 우리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은 확실하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인 우리 인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유럽은 대부분 나라 사람들이 그리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비교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 프랑스나 이태리등은 관광 수입이 상상을 초월한다. 조상 덕분에 편히 사는 것이다. 농담으로 이태리 수상은 산업을 어떻게 부흥시키느냐에 관심보다 매일같이 로마에 관광자 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다. 그러니 우리랑 비교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단지 학생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교수처럼 편한 교수가 없다. 소위 nine to five를 차지하고라도 교수는 학교에서 왕이다. 모든 일을 학생에게 미룬다. 논문 쓰는 것도, 연구과제 쓰는 것도, 개인의 잔일조차도 학생 혹은 포닥 몫이다. 더 나쁜 것은 그렇게 부려 먹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면서도학생들에게 돈을 많이 지원한다고 불평이다. 학생이 노예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젊은 교수들도 정년보장이 되면 연구를 포기한다. 미국에서는 정년보장이 되어도 5년에 한번씩 평가하여 실적이 좋지 않은 교수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경고와 함께 이행하지 않으면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한다. 정년보장이란 결국 계속 일련의 연구실적을 유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게 자기를 나태하도록 놔두면 결국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없어지고 주 궤도에서 벗어나 혜성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교수의 이기심이 발동하여 자신의 왜소함을 감추기 위해 온갖 종류의 억담과 고집이 늘어난다. 시간이 되면 그렇게 교수는 모든 발전적인 의견에 발동을 거는 초라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교수 생활을 오래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학생과 교수 예외없이 소위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배경을 가진 사람은 교수가 되어서도 열심히 한다. 소위 헝그리 정신이 있다. 좋은 집안의 배경을 가진 사람은 대게 일찍 포기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다른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학과도 이 법칙에서 예외가 없다. 그게 차이인 것 같다. 나한테 다른 선택권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 물론 그렇지 않은 반론도 있다. 소위 학문의 일대성을 위해서는 3대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법칙이 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세상의 법칙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모든 일반적인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 않는 예들이 내 학생들에게서, 내 주위 과학자들에게서 수 없이 본다. 내 학생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그저 기우이기를 기대해 본다. 그 어떤 경우이건 나에 대한 책임 부분이 분명히 있다. 교수로서 내가 게으름 부리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헝그리 정신이 새로운 것에 대한, 새로운 지식에 대한 베고픔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의 배경과 관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