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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5-09-28
  • 조회수7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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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펠링조차 그리 쉽지 않다. 모든 이름이 생소하다. w는 브이로 발음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곳곳에 z가 끼여 있다. 외국사람이 한국에 올 때의 느낌일 것이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여느 도시나 다름없다. 추운 런던에서 여길 오니 우선 땀이 난다. 조금만 걸어도 와이셔츠가 흠뻑 젖는다. 노보텔 호텔은 신도시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학회장은 걸어서 15분 정도. 온통 땀에 젖는다. 그것도 4층까지 걸어서 올라가노라면 다 지친다. 가져간 와이셔츠 숫자가 적을까 걱정이다. 영국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어서 다행히 미국에서 입을 옷을 아꼈다.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그리 낫설지 않다. 폴란드 사람들의 생김새는 여느 유럽인들과 조금 다르다. 골격이 다르다. 여자도 남자도 우리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TV에 나오는 배우들은 여느 서양인들과 같다. 우리나라도 그럴 것이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예쁜데 길 거리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은 거의 모두 영어를 사용한다. 옛 동구권의 나라이지만 의외로 흔적이 안 보인다. 구 도시에 가면 러시아와 비슷하다고 식당 관광객이 귀뜸해준다. 저녁을 걸러 아침에 식당에 가니 사람천지다. 하기야 700개가 넘은 방이 있다니 놀랄 일이 아니다. 뷔페식당인데 서양식 모든 것이 다 있다. 영국에서 안 보이던 오이 상치 토마토등 야채가 싱싱하게 놓여 있다. 베이컨은 기름 덩어리로 꽝이다. 프랑스에 먹던 베이컨은 바삭바삭하여 고소한데 이런 것은 딱 질색이다. 역시 유럽은 소세지다. 한국에서는 먹지 않지만 여기서는 그것마저 거르면 기름진 것이 없다. 적어도 아침에는.. 감자요리가 그냥 작게 잘라 살짝 삶고 기름없이 프라이에 갓 볶아낸처럼 싱싱해 먹기가 좋다, 시리얼도 너트가 많아 좋다.이틀을 아침만 먹고 버텼더니 다이어트 한 것처럼 몸이 가볍다. 아침을 잘 먹어서 그런지 특별히 부담도 없다. 어차피 시차적응이 잘 안되어 졸리는 것은 개의치 않다.

투박한 음식처럼 폴란드 사람들은 무뚝뚝한 것처럼 보인다. 얼굴에 웃음이 없다. 호텔 프론트에 있는 아가씨도 서빙하는 동안 웃지를 않는다. 내가 웃어도... 대화하는 동안 웃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소련의 영향일까.. 그러고보니 소련사람들도 웃는 법이 없었다. 공항에 나오니 택시 호객꾼이 있다. 그런가보다 하고 문을 나가보니 택시가 줄줄이 서 있는데 다른 곳으로 간다. 왜 여기 택시로 안가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다른 택시라고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묻자 곧바로 공공택시로 대려다 주었다. 아직도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오래전 모스크바에 가서 사기 당한 것이 생각난다. 이 사람들은 내가 싫어하니까 금방 그만둔다. 오늘 아침에 호텔에서 나올 때도 호텔보이가 택시 타냐고 물어보면서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 한다. 내가 공공택시를 탄다고 하자 60 폴란드 돈이면 된다고 한다. 올 때 준 것이 44 인데 싫다고 했더니 금방 공공택시로 데려다준다. 적어도 사기는 안치는 것이다. 이번 택시는 또 크레디카드가 안된다고 한다. 딴데로 가려고 하자 10유로만 주면 된다고 해서 그냥 탔다. 도로는 여느 도시나 다름없지만 가끔 군인 옷을 한 경찰이 눈에 거슬린다. 그렇지만 몇 년전 루마니아에 갔을 때의 동구권 허름한 도시의 흔적은 어디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사람들이 더 부지런한가보다. 곳곳에 새로운 건물들로 넘쳐난다. 하기야 아침에 식사하면서 만난 관광객이 여기에 십년전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니 여기도 발전속도가 빠른가보다.

어제는 학회가 없는 날이지만 시내 구경대신 논문을 쓰기로 했다. 종일 호텔에 앉아 밀린 논문 몇 편을 끝냈다. 배가 고파 졸리기도 하고 잘써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다니며 집에 와 혼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그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일까.. 두 사람 논문이 더 남아있지만 미국에서 더 시간이 있다. 또 실제로 나혼자 쓰는 것이 어려운 논문들이다. 아직도 논문의 논조가 명확하지 않다. 논문을 잘 쓰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같이 앉아서 한번은 써야한다. 요즈음은 논문 쓰기가 갈수록 더 어렵다. 사이언스 네이쳐 논문을 늘 준비하지만 다 성공하지 않는다. 성공하면 꼭 로또맞은 기분이다. 로또를 맞아보진 않았지만...내용은 충분히 좋은데도.. 연구를 직접하는 당사자는 더욱 실망스러울 것이다. 자존심도 상하고.. 하지만 우리는 심판관이 아니니 불평할 수가 없다. 현재의 제도를 불평해도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이다. 연구소의 평가 상당부분이 그렇게 평가가 될 것이니 노력을 계속하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씩 만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우리의 연구 능력이 많이 향상되는 것 같아 만족한다. 비록 네이쳐 사이언스가 아니라도 내용이 너무 좋다. 이것 모두 연구소가 있는 덕분이다. 잘하자는 분위기, 서로 돕는 분위기가 우리를 조금씩 향상시킨다,. 이렇게 가는 것이다. 작은 것 하나하나부터 정성을 들여가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변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속한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숨쉬는 동안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