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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그리고 주절주절 <2008.05.01 21:50:03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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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5.01 21:50:03


어느덧 일주일이 정신없이 흘러가고 그룹미팅 후 점심먹고 모두들 흩어지고 이제는 혼자다. 조용한 오후다. 오늘은 앞 공사장 소리도 없다. 이제 공사가 끝난 것일 것이다. 햇살은 따갑지만 뺨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은 그대로 겨울이다. 모처럼 맞는 조용한 오후여서 그런지 마음이 차분하다. 논문을 쓸까하고 왔지만 규는 집에 간 것 같다. 하기야 이번 주 내내 기다렸으니 본인도 지칠만 할 것이다. 나한테도 짜증난 일주일이었다.
어제는 아주 힘든 하루였다. 이번 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회의가 있었고 어제는 발표 2개, 미팅 하나가 있는 날이었다. 전날 동생이 와서 같이 저녁을 하고 아침에 나와 자료를 검토하고 CD에 복사하려고 학생들을 찾았더니 몇 명을 제외하고는 없다. CD를 복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별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대꾸들이 없어 사무실에 갔더니 그날따라 옥주도 없다. 다른 사람이 한다고 덤볐지만 결국 못한다. 나중에 은성이가 와서 결국 복사했지만 이미 약속시간이 늦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늦을 것 같다. 종기원에 도착하여 보니 이미 늦었지만 불쾌함 없이 대해주어 고마웠다. 하지만 막상 발표하려고 자료를 열려고 해 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학교에 연락하여 은성이한테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지만 파일 크기가 커서 여러 애를 쓰지만 결국 받는 데는 실패했다. 궁여지책으로 파일없이 그냥 말로 설명하기로 양해를 받고 말로 때웠지만 속이 말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이런 일을 처음 당해봤다. 아마도 이 팀에서 다시는 연구비를 받지 못할 것이다. 내 불찰에 말은 안했지만 모두 속으로 혀를 찰 것이다. 머피의 법칙이 통하는 오전이었다.

점심때 돌아와 보니 대유 윤전무, 백부장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아침의 소란이 식욕을 감퇴시켜 그냥 연구실에서 회의를 진행시켰다. 회의를 하다보니 또 한시가 지나 할 수 없이 식사하고 오후 2시에 다시 종기원 TND 회의차 종기원을 방문했다. 끝나고 최박사와 다시 그라핀에 대해 상의하다 보니 밤이 되었다. 돌아와 강표, 은선이와 식사하면서 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과제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결과가 나와 정신이 없다. 매일 결과가 살얼음이다. 벌써 몇 번의 고비를 넘겼을까... 어제도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아침에 강표를 보니 역시 잘 안 되는 것 같다. 밤늦게 작업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니 피곤함이 가실 리 없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왜 안 되는가를 고민하지 실망하고 주저앉는 법이 없다. 강표가 아니었으면 이 과제를 끌고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과제는 어렵지만 강표가 있어 성공할 것이다. 그래도 회사가 우리를 믿어주고 참아주니 그처럼 고마울 수가 없다. 여러 면에서 보면 이 과제가 성공해야한다. 이 일에 목 걸고 있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성공할 것이다. 나도 이 일에 메달리는 이유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나로서는 과학자로서 기초연구를 통해 산업체에 직접 응용되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어쟀든 정신없이 시간이 간다. 논문은 끝없이 밀려있다. 어떻게 하면 회의를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 만나는 것을 줄일 수 있을까.. 전략과제회의를 시작한 것이 후회가 된다. 연구비가 없으면 연구를 할 수 없으니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허리가 아파 밤에 일을 할 수가 없으니 효율은 떨어진다. 바쁜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논문을 쓰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나를 힘들게 한다. 어제는 일 때문에 짜증나고 주위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 날이었다. 나 때문에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다. 그들 역시 나를 보면 실망할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이 싫다... 이것조차도 나의 욕심... 다 마음에서 버리면.... 그러면 나한테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 앞에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외로움... 그리움들... 아무리 바빠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들... 훌훌 벗어버리고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를 나두는 이 틀들을 벗어버리고... 교수라는 것... 가장이라는 것....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