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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배려하는 마음 <2008.05.01 21:36:09>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3-04-08
  • 조회수1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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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05.01 21:36:09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인 우암 송시열은 우의정을 지낸 노론의 거두였다. 그는 청렴하기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송시열의 집에 먼 친척뻘의 젊은 사람이 관직을 부탁하러 송시열의 집에 거하게 되었다. 송시열은 아침에 젊은 사람에게 세수를 먼저 하라고 한 후 말없이 수건을 건네주고 옆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이 젊은 친구는 아무 생각없이 수건을 쓴 후 송시열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 수건은 전면이 모두 사용되어 송시열이 다시 쓸 수는 없었다. 그것을 본 송시열은 젊은 친구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 친구는 돌아가 송시열의 무정함을 비난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송시열은 이렇게 말했다. 젊은 친구에게 수건을 먼저 쓰라고 한 이유는 기다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수건의 절반만을 쓰고 자기에게 건네주기를 기대했지만 젊은 친구는 그런 생각없이 그냥 자기가 다 쓰고 그에게 건낸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관직을 하는 경우 결코 좋은 봉사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어렸을 때 책에서 본 것이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다. 어느 누군가 나에게 이런 시험을 하는 경우 나는 어떻게 대처할까 어린 나이에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마음의 훈련, 실천하는 행동으로 생기는 것이리라.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이것은 교육에 의해 나누는 마음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 실험실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우리 실험실은 사람이 많아 사실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없으면 서로 조화를 이루어내기 힘들고 큰 실험실로서 시너지 효과도 내기 힘들다. 학생들은 교수가 각자의 생활패턴도 잘 모르고 자기에 대해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 같은 경우 그렇지 않다. 각자의 가치관, 생활 패턴, 성향, 성격등을 늘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의 연구 주제를 전체와 어울려 팀워크를 통해 효율적으로 수행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 실험실에서 나의 역할이기도 하다. 또 우리처럼 제안된 실험 공간에서 서로 가까이 오랜 시간을 가까이하면 사실 오랜 내 경험으로 보아 한 가지 행동만 보아도 금방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실험실 내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과 배려하는 사람은 행동에서 여러 가지 다른 패턴으로 나타난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실험을 한 후 비어커나 실험 용기를 깨끗이 씻어 정리해 놓는다. 다음에 쓰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이다. 실험기구도 쓰고 나면 제 자리에 갔다 놓는다. 우리 실험실처럼 한곳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있지 않고 흩어져 있으면 기구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또 실험 노트를 깨끗이 정리해 둔다. 이는 다음에 오는 후배를 위해서 자기가 없더라도 실험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기가 전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장치에 대해 쉽게 매뉴얼을 작성해둔다. 이 모두 다음에 오는 후배를 위한 배려이다. 대학교 실험실은 이렇게 늘 순환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러한 배려는 자기가 소속된 실험실의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이런 삶들은 자기가 먼저 불편한 자리를 차지한다. 음식을 먹으러 갈 때도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다르다. 우리 음식은 나눔의 문화이다. 한 테이블에서 음식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눈다. 때로는 실험이 제때에 끝나지 않아 식사에 조금 늦게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 늦게 오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모두 휘젓지 않고 일부를 깨끗하게 남겨둔다. 이런 사람들은 남이 옆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행동이 똑 같다. 흔히 말하면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작은 행동들은 쉽게 눈에 뜨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난 이런 행동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그런 때는 속으로 참 흐뭇하다. 이런 애들이 있으니까 우리 실험실이 유지되는구나하고.. 그렇다면 이런 행동들이 본인의 발전에 저해가 될까? 그런 행동들은 희생이 따르고 본인이 뭔가를 성취하는데 더 느리게 가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그런 행위들은 결국 개인을 더 부지런하게 만들고 주위의 분위기를 내 쪽으로 끌어들인다. 결국 내 친구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런 자세는 단순히 인간의 삶을 따뜻하게 하는 인간적인 태도이기도 하지만 과학자로서 기본적인 생활 태도이기도 하다. 과학자도 과학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난 내 실험실 사람들 모두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서로 도우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 정말 전 세계 최고의 실험실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