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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대학원생 - 2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9-10-14
  • 조회수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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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지쳐있다. 매주 토요일 논문 쓰기로 약속하고 연구논문 작성 속도를 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저녁에는 건강이 가능하면 아이들하고 일을 하려고 한다. 덕분에 저녁에 같이 일하는 분위기가 좋다. 그러나 일이 너무 많다. 전보다 연구의 깊이가 증가하고 아이들의 고민도 너욱 많아지니 생각해야 할 것도 많다. 내 입장에서도 연구의 novelty 를 먼저 따져봐야하고 중요한 데이터를 어떻게 계획하는지 고민한다. 조금보다는 더 나은 방향의 데이터가 필요하고 조금보다는 더 쉽게 설명하는 그림을 그려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일이 많아진다. 논문을 쓰는 것도 조금이라도 더 쉽게 설명하려고 하나보니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전보다 연구의 질이 높아지는 대신 피할 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밀린다.

다른 교수들은 어떻게 연구를 진행시킬까. 연구소서에는 다른 동료와 연구를 진행시키지만 대학에서는 주로 학생들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시킨다. 교육도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 지금 나의 상황은 연구단장으로서 연구소와 대학교 중간의 역할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이면서도 대학에서 근무하고 연구의 주체가 여전히 대학원생이지만 연구원도 동시에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다른 젊은 교수들과 연구를 병행하지만 연구의 비젼을 설정하고 핵심연구를 진척시켜야 하는 것은 역시 나의 몫이다.   

결국 학생입장에서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지금 이 학생과의 관계에서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흔히들 학생은 모든 연구 데이터를 도출하고 논문도 다 직접 쓰고 교수한테 주면 교수들은 논문을 대략보고 코멘트해 준다. 그러면 다시 수정하고 몇 번 반복하여 최종적으로 논문을 제출한다. 이 과정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가 필요하다.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자로서의 자질을 키운다. 이것 훈련과정은 미국이나 유럽이나 유사하다. 그런데 요즈음 추세를 보면 한국에서 박사를 하고 외국대학에서 박사후연구를 훈련하고 한국대학에 교수로 임용하는 숫자가 외국대학에서 박사학위하고 귀국하는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 이 차이가 뭘까?

아마도 교수 임용자격조건이 단순히 학벌이 아니라 높은 논문의 질을 까다롭게 쳐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 좋은 연구논문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일류대학 졸업자가 아니라도 교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부정적인 측면은 연구논문을 양산하여 논문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학벌이 높으면서도 실력없는 교수도 수없이 양산하고 있으니 후자의 경우가 더 공정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나도 일류대학출신이 아닌데 평균이상으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으니 나도 그런 혜택을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을 교육하는데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도 같이 밀착하게 협력해야 한다. 교수와 학생과의 적절한 관계는 공동연구자이다. 학생이 노예라고 농담하는 것은 스스로 연구자 관계를 폄하하는 것이다. 교수가 권위적인 ‘체’하면 이미 그런 관계가 금이 간다. 흔히 어떤 교수는 학생들과 관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교수의 자격 미달이다. 왜냐하면 교수의 의무가 이미 교육과 연구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교수보다 친구가 되라. 그럼 협력자로 더 쉽게 풀어갈 것이다. 대학원생이 연구실에 들어오는 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대학원생이 혼자서 실험, 논문 쓰는 것을 다 잘할 수 없다. 대학원생이 시작할 때 교수가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나중에 쉽게 성장할 수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가져가면 대부분 지치게 되고 좌절한다. 나중에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논문 작업은 life-time learning process인 것처럼 평생 숙제다. 그러니 교수가 다 잘한다고 체할 필요없다. 겸손하게 대학원생들과 같이 쳐다보고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논문을 쓸 수 없다. 대학원생도 전과 달리 책을 많이 읽거나 쓰지 않는다. 전화메시지가 전부다. 누가 밤샘하며 연애 편지 쓴 적이 있을까. 누가 일기를 쓴 적이 있을까. 초등학교 빼고.. 글을 쓰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다. 영어는 더욱 그렇다. 모두 자만하지 말자 우리 모두가.

대학원생이 노예라기보다 요즘 내가 노예인 것 같다. 일에 치여 하루가 끝나면 머리가 멍하다. 내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그렇게 일해도 다른 대학원생, 연구원 역시 모두 서운하다. 일의 순서가 밀려있으니 당연하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감정 고생을 겪을라 치면 마음이 정처없다. 상처가 밀물처럼 밀려오면 가끔은 어디선가 가 버리고 싶다. 그런데 내 마음 둘 곳이 없다.. 내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은퇴해 먼 곳에 가서 혼자서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다. 내 몸에 힘이 모두 빠져나가 그때쯤이면 욕심도, 외로운 마음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학생들이 있는 한 나의 존재 이유가 있다. 비록 내가 노예일지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한 노예라도 괜찮다. 아직도 나의 존재이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