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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베른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9-04-30
  • 조회수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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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엔 비가 추웠는데 돌아오는 오후엔 가끔은 햇볕이 보여 돌아오는 길이 편하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이 부산해 보인다. 호텔 방안의 창가가 햇살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3일간의 일정이 끝이 났다. 스위스 국립과학재단 NCCR평가였다. 말하자면 한국과학재단 우수연구센터와 비슷한 셈이다. 연구비는 12년과제로 20백만불 (스위스프랑)이다. 우리나리와 비슷한 셈이지만 20명 이상의 연구원이 참여한다. 모든 자연과학분야가 참여해서 몇가지 단계를 거친다. 이번 평가는 거의 마지막 단계로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내 위원회는 8명의 연구센터중에서 3-4명을 선발하고 4개 상위 분야에서 최종적으로 3-4명을 선발한다. 이번 위원회에서는 최대 3명이 추천되어야 최종 선발 속에 들 수 있다. 아마 2개 정도일 것이다. 이번 위원회에서는 물리, 화학, 계산과학 분야에 들어가 있어 평가가 쉽지 않다. 내 분야는 당연히 물리지만 2차원 물질 연구에서 요구사항들이 많아 평가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한국에 있을 때 프로포우절을 보내서 서면평가하게 하는데 평가내용이 아주 디테일하다. 다 읽는데도 2일의 시간이 필요하고 각각의 항목에 따라 점수를 주고 왜 그런 점수 이유를 쓰게 만든다. 여기서 3일동안 8명의 후보자에게 각각 2명의 워원이 평가하고 점수를 준것에 대해 왜 이유가 필요한지 모두 공유한다. 그리고 나서 각자의 후보자가 발표하고 다시 토의하게 하고 모두 각자 평가점수를 준다. 그렇게 평균 후 다시 결과에 대해 합리적인 결과인지 토의한다. 최종적으로 다시 토의하고 분야별 상이한 것에 대해 서로 논리적인 결과인지 다시 순위를 조정한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마치 사과와 배의 차이에 대해 점수를 주라는 것이어서 힘들다. 늘 그랬지만 나한테는 참 어려웠다.

많은 것을 배웠다. 사실 이번 평가 요청이 와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유럽 사람들이 이 과정의 합리성을 어떻게 도출하는지가 궁금하여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기는 해도 많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정동안 합리적으로 도출하는 과정을 많이 이해했고 다음 3년후 평가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 세계에 여러 유명한 사람들도 왔고 젊은 친구들도 있었다. 고집스런 사람, 잘난체하는 사람, 까다로운 사람, 말 많은 사람, 합리적인 사람, 모두... 그 사람들이 모여 연구주제 중요성, 리더쉽, 공동연구, 남녀연구원 공유, 모두 같이 토의하며 공유하는 것이 아주 좋았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다양한 의견에 대해 스스로 객관화시키고 합리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사실 이 과정을 참여하기로 결정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가 아픈지 1년 4개월이 벌써 지났다. 지난번 3월 10여일동안 중국 출장하면서 매일 강의를 돌아다녀서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평가하고 토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나한테는 스스로에 도전이라 생각해 한번 시도해 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지난번 국회 포럼에서 그 짧은 시간에 사회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여기서는 영어를 쓰니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을 자유스럽게 구사하는 것이 역시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말을 한다는 것이 이것게 힘든 것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나마 말을 듣고 논리를 흩트리지 않고 집중하는 일이 가능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1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눈을 통해 글을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의사 소견처럼 그냥 익숙해져야한다고 했는데 그게 현실이 아직도 어렵다. 내 눈이 아직 고집스러운 것이다. 빨리 적응하면 좋을텐데 원래 내가 미련 곰탱이일 탓일 것이다. 그래도 3일째는 말이 더 쉬어졌다. 이 부분은 어느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눈은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논리부분은 노력해야 한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아직은 내가 노력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없어지면 그때 포기해도 될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베른 시내는 정말 작다. 조금만 걸어가니 강건너 끝이다. 사방 10분이라더니 이해가 간다. 금요일 오후가 사람이 북적인다. 트램이 끊임없이 다닌다. 바로 강 넘어 산이 있고 상상하는 것처럼 산 언덕으로 집들이 가득차 있다. 그 멀리 살프스 산에는 아직도 눈이 모두 싸여있다. 여름이 되면 모두 눈이 없어질까. 그림같은 풍광들이 모여있다. 여기는 매연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버스들이 다니면서 느껴진다. 그런데 한 블럭만 지나면 상쾌하다. 여기도 관광객이 보인다. 여름이면 더 많아 질 것이다. 어른 아이 없이 모두 걷고 있다. 하가로운 금요일 오후의 풍광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작은 골목길 안에는 섹스무비가 보인다. 젊은 연인들이 영화관으로 들어간다. 이것도 그런 행복의 일상일까. 그런 일상만으로는 행복을 지속할 수 있을까. 내가 연구를 안했더라면 나도 그런 일상속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이틀만 명절에 지내고 나면 무료해져 연구일로 돌아가는데 이것은 일중독일까 아니 마약 같은 것일까. 섹스도 그런 것일까. 

시내는 여느 유럽처럼 벼룩시장이 있다. 여기는 아직 추운지 시장이 크지 않다. 주위에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큰 말을 쓰는 장기를 두고 있다. 평화로운 풍광들이다. 나도 나이들면 그럴까. 궁금하다. 그럴지도 모른다. 워낙 바둑이나 장기같은 잡기를 좋아한다. 나중에 내기하는 것도 유쾌한 일상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벼룩시장에 들러 포도, 살구, 그리고 호기심에 살구같은데 훨씬 더 큰, 그리고 몇가지 빵을 샀다. 들아오는 도중 스타벅스에 들러 달달한 카라멜 마키아토를 샀다. 다 합쳐서 30스위스 프랑이니 3만원정도이니 가격도 적당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살구 같은 것을 샀는데 주인 아가씨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해서 두 개만 샀는데 다행이다. 약간 시고 물이 많아 느낌이 별로였다. 길이가 길고 씨가 감 같은데 맛은 별로다. 살구는 영락없는 살구고 맛도 비슷하다. 포도는 이제 어느 나라에 가도 같다. 글로벌시대의 슬픈 현실이다. 외국에 가면 과일만 보면 사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한국에서도 그런 야시장에 가면 늘 같은 마음이다. 나는 영원히 촌놈일 수 밖에 없다.       

외국에 나오면 가끔 혼자 밥을 먹어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경우 혼자 밥먹는 느낌이 싫어 건너 뛰기도 한다. 너무 흔한 일이라 여행하면 그래서 몸무게가 준다. 여기 3일동안도 예외는 아니다. 홀쭉해졌다. 눈이 패인 느낌이 있다. 하기야 돌아가면 그 다음날 몸무게가 바로 올라가니 할 말이 없다. 몸무게가 그 이상 올라가지 않으니 그나마 위안이다. 텔 방에서 이것 저것 먹으며 글을 쓰는 것도 느낌이 좋다. 내가 갖는 최고의 호사라고 할까. 외로운 느낌도 호사일까. 글도 잘 쓰여진다. 여유가 있어서일까. 학교에 있을때는 항상 사람들하고 같이 씨름하다 보니 그런 여유가 소중하다고 느껴지는 걸까.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하고 같이 있든 이렇게 혼자가 있든 외로움은 여전히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것들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는 것들도 멀리하는 것을 훈련해야한다. 내가 잘못하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마 늙어지면 자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