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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효율과 낭비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9-03-04
  • 조회수3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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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분기마다 단장회의를 한다. 이 회의를 통해 원장, 행정팀장들과 모두 같이 행정업무, 정치적인 이슈, 비전, 철학적인 모든 문제를 토의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을 출범한 이후 중간에 원장이 바뀌기도 했지만 지금도 계속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회의가 지루해지고 회의에 가기가 싫어 몇 번씩 건너기도 했다. 왜 지루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이번 주 회의를 통해 왜 지루한지 이유를 알았다. 하기야 원래 회의란 일이 잘 되지 않기 떄문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것이 회의지만 요즘 단장회의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회의 아젠다를 보면서 처음 주제를 보고 경악했다. 지금 국회 특별감사중이다. 그 질문 중에 현재 전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연구센터가 많은데 효율이 분산되어 있다고 본원에 집중하라고 한다. 원래 철학은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비슷하게 서울의 연구인력 집중을 피하기 위해 전 지역에 분산하여 정치적인, 사회적인 균형을 목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원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식한 국회의원이 질문하는 그 사람들보다 더 놀라운 것은 행정직원도 차치하고라도 그것을 듣고 당연히 그런 것처럼 대책을 준비하는 원장의 태도가 정말 놀라웠다. 연구원 철학이 무너지는 질문을 하는데도 답변에 대해 단순히 받아들이는 원장의 태도가 어이가 없었다. 직원들의 경직도 태도로 인해 그동안 회의 아젠다가 왜 따분한지 알았지만 회의가 뭐가 문제가 있는지 이제 알았다. 그동안 단장회의에 대해 내가 가졌던 불만이 바로 이것이었다. 원장의 철학 부재.. 단순히 미세경영이라는 것..  단장들이 모두 분개하였지만 직원을 비롯한 원장도 별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무마하려고 했다. 그 이후 종일 회의가 진행되었지만 흥미를 잃었다. 오후까지 겨우 버텼지만 끝난후 저녁도 먹지 않고 대전에 도착해 입석을 타고 일찍 돌아와 버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단장회의에 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가치있는 일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다. 무엇이 가치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대부분 살면서 쳇바퀴 돌 듯 정신없이 산다. 생각할 여유조차도 없이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난 호기심도 많고 모험심도 강했다. 이것 저것 닥치지 않고 해보고 싶었다. 겁이 없어 뭐든지 해보았고 다치기도 많이 다쳤다. 어렸을 때는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한다고 핀잔을 받은 적도 있다. 어릴때야 당연히 이것 저것 해보고 재미없으면 그만두고 또 다른 일을 볼 수 밖에.. 아주 어렸을 때 누이한테 화투를 배웠다. 초등학교때는 장기를 배웠고 다른 어른들을 이기니까 우연히 바둑책을 보고 바둑에 탐닉했다. 고등학교 때 잘 두는 친구한테 배우며 많이 늘었고 재미가 있었다. 평생 취미가 되었다. 그런 바둑도 대학교에서 포기했다. 공부하는데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아했던 유도도 고등학교 후 대학을 위해 포기했다. 인생이란 것이 좋아한다고 모든 것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가 가치있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30년 이상 연구하며 살았다. 이제는 남은 기간이 지나온 기간에 비해 많지 않음을 느끼며 어떻게 효율적으로 연구할까 하고 고민한다. 아픈 이후 이런 생각을 더 자주한다. 일하는 동안 할 수 있을 때 효율을 올려야 한다. 특히 건강을 위해 전보다 시간을 줄이다 보니 시간을 더욱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젊었을 때는 항상 연구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부터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 부분이 더 절실하다. 중요한 연구주제를 선택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최소화시키고 싶다. 회의도 그렇다. 살다보면 가끔 피할수 없는 경우도 많다. 사람과의 관계도 가끔 피할 수 없다. 불필요한 위원회는 피하려고 한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집중한다. 

지난번 라오스 사원에서 소원을 빌라고 했다. 사실 난 소원이 없는 편이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뿐. 그런데 피식 웃음이 났다. 무의식적으로 소원을 빌었다. 내 주위 연구하는 사람들..  아파하는 이들이 곧 나의 소원인 것이다. 그들이 모두 잘되어 그래서 나도 행복하고 싶다.. 그게 내 소원인 것이다. 그래 모두 열심히 하자.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