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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들의 위기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8-12-26
  • 조회수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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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처음 연구를 시작하다보면 다양한 형태의 일들이 봉착하게 된다. 사실 대학원에 들어오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거기에 힘든 과정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강조해도 대학은 아마에 비유되고 대학원은 프로와 같다고 강조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잘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혹독한 훈련과 절제가 필요하다고 해도, 시작할 때 그것을 가늠하기 힘들다. 멀리 숨어있는 일곱색 무지개를 쉽게 가질 수 있다는 정도의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하기야 그런 정도 긍정적이라는 사실만으로 시작은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학원생은 연구에 대해 사실 아는 것도 없고 더구나 어디서 시작해야할지 혼란스럽다. 아니 막연하게 연구라는 것도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대학원에 들어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년 혹은 이년쯤 째면 그 희망이라는 것이 흩어지고 어김없이 회의의 유혹이 찾아온다. 그 유혹은 스멀스멀 온 몸에 기어들고 급기야 포기한다. 

그 유혹은 첫 번째 내가 연구능력은 없는 것일까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시도했는데 진척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연구했던 막연하게 멋있는 연구라는 것을 해보고 싶은데 쓸데없는 일만하고 도대체 재미가 없다. 디바이스라는 것이 클린랩에 가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 10번을 시도해도 늘 실패한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3년을 디바이스를 만들기만 한다. 그 사이에 연구라는 것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포기해버린다. 합성을 해도 수많은 변수가 괴롭힌다. 시간이 필요하다. 수없이 실패한다. 슈퍼켜패시터, 전지도 셀을 최소 100개를 만들어야 비로소 감을 알게된다. 무협소설에 보면 무술을 배우기 위해 스승에 가면 몇 년이고 산에 물만 기른다. 초보자는 불평이 많지만 물을 길다 보면 근육이 생기고 물을 넘기지 않기 위한 평형감각이 생겨난다. 그때 이후에야 비로소 무술를 배우라고 한다. 이때를 못 참으면 하산하는 것이다. 비슷한 이치다. 

여기에는 배리어라는 것이 있다. 한번 높은 산을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또 다른 산이 있더라도 또 넘는 요령을 습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산이 너무 크게 보이면 자신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 포기한다. 그러면 이 일이 가치있는 것일까 자문하고 다른 일로 도망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사실 이런 고생을 하는 것보다 다른 일들은  더 쉬운 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가치가 있는가는 차치하고 우선 쉬운 일을 선택한다. 사실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이란 없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다. 그러나 도망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일들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무지개를 찾아서 간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일은 다음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대학원을 시작할 때 어떻게 가치관을 갖고 시작했는지, 어떤 다짐으로 시작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주위에 가장 잘하는 사람을 멘토로 삼는 것이다. 자기 교수가 너무 멀다고 느껴지면 주위 가까운 선배를 멘토로 삼으면 편하다. 힘든 학생들이 멘토로 삼아 이렇게 극복해 왔다. 사람은 살면서 가치관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 잘 살고 싶고, 어떤 사람은 미니멀라이프로 최소한의 돈을 얻고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 연구하는 사람들의 DNA는 지적유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돈은 최소한의 경제만 있되 (살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찾고 그런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을 갔을 때 나중 대학을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순전히 반복하는 일상이 너무 싫어서 탈출하고 싶었다. 아마 난 지금도 그때의 결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실험실은 대체적으로 학생들과 연구원들이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학생들이 처음 연구를 시작하면서 연구원들에게 작은 일들까지 소소한 것부터 배우며 이 관계에서 멘토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또한 연구원의 의무도 있다.  큰 연구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일들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각자 해결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구효율이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학생들과도 서로 공생하는 부분이 있다. 멘토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 뿐만 아니라 연구책임자와 긴밀히 협력하여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연구의 흥미를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학생들은 힘들다보면 쉽게 포기할 수 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연구자는 멘토역할을 싫어하기도 한다. 선택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럼 장기적으로 연구토양을 만들기 어렵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먹이고, 치우고, 말하기, 걸음마 모든 것을 돌봐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연구력을 키우지만 이를 통해 연구토양을 서로 만들어간다. 학생들이 성장하여 스스로 연구자로 성숙되면 또 보람이 느껴진다.  
  
이제까지 많은 대학원생들이 거쳐 갔다. 대부분 학생들은 어김없이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극복한 것이 신기하고 버텨준 것이 고맙기도 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큰 어려움없이 잘 넘어간 사람들도 있다. 하기야 그런 위기가 없었을까. 아마도 상대적으로 덜 어렵게 그복했을텐데 그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무엇일까. 다른 졸업생들을 기억해보면 쉽게 극복한 사람들은 더 긍정적이고, 생각하는 패턴이 단순하다. 가까운 곳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찾는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도 생각해보면 소소한 즐거움을 많이 찾은 것 같다. 다른 일들에게도 관심이 많아 소위 잡기에도 능하다. 운동도 다양하게 좋아한다. 내가 직장 다니며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과연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때마다 결론내린 것은 생각하지말자, 그냥 가자였다. 내가 건강을 헤쳐 절벽에 부딪혔을 때도 결론은 하나였다. 그냥 앞으로 가는 것뿐. 인생이 왜 사느냐 묻거든 그냥 웃지요라고 말한 시인처럼 답이 없다. 그냥 웃고 갈뿐. 그래도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인생의 답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