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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봄은 온다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8-04-14
  • 조회수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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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날씨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덥다. 아침 초청 강연하는 동안 내내 땀을 흘렸다. 심천의 날씨는 봄이지만 30도 근처이니 여름처럼 더울만하다. 양복 상의를 벗었는데도 여전히 더웠다. 한국 어제는 벚꽃이 휘늘어지는 날이었다. 그 전에는 추워서 밖에 나가기도 어려웠다. 날씨가 무상하다. 모처럼 땀을 제법 흘린 날이었다. 언제쯤이었을까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린 지가. 생채기가 난 이후였을까.

발표가 끝난 후 오후 복도에 한가롭게 쉬고 있다. 아직도 세션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이것저것 생각하며 쉬고 싶다. 그러나 쉽지 않다.  사람들이 계속 질문한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보다 질문이 더 많을까. 아마도 여기가 더 사람이 많은 탓일까. 확률적으로.. 학생들은 어려워해도 젊은 교수들은 스스럽게 대화한다. 이들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침 식사를 놓쳐버렸다, 얼람을 놓고 잤는데 놓칠 소리가 아닌데.. 오히려 시간이 남아있는 생각이 들어 편하다. 어제 저녁때 후밍의 홈커밍 파티 시간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탓일까.. 그러나 행복했다. 친구들과 같이 있다는 것.. 친구하고는 외로움이 들어올 곳이 없다. 여기 올 때는 망설였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잘 한 것 같다. 오히려 생각한 것 보다 시간도 5분 정도 단축시켰다. 40분에 비해 5분은 대단한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잔소리가 많아 더 길어졌을 텐데 오히려 필요한 말만 하다 보니 예상된 분량에 비해 오히려 시간이 단축해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이해한 것 같다. 결과에 대해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잘하는 친구들은 정확히 이해하고 결과를 아주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가임은 아무 생각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잘 알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공인 셈이다. 절반의 성공. 그러나 갈 길이 더 남아있다. 앞으로 학회에 가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90%의 성공 그러나 10% 남은 것이 더 중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긴 시간.. 그러나 싸움이다. 인내의 싸움. 우리말은 여전히 힘들다. 가끔씩 단어가 잊어버리기가 일쑤다. 건망증처럼.. 하긴 그냥 건망증처럼 받아버리면 그만이다. 금방 돌아오니까. 눈도 회복할 것이다. 가끔씩 절들이 도망가 버린다. 하긴 단어가 남아있기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전에 평가 발표에도 지금 보니 영어 스펠링이 일부 틀려있다. 그때는 왜 안보였을까..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이번 겨울은 혹독한 겨울이었다. 그러나 이 혹독한 겨울은 오히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전처럼 그렇게 일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셈이다. 전에 늘 말한 것처럼 work smart를 정말 생각할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생채기가 없어지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알라딘의 지니처럼 금방 똑딱 없앨 수 없다. 하기야 지니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지 않은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낡은 세포는 없어지지만 차근차근 세포를 쌓거나, 뇌라면 다른 길로 걸어서라도 간다. 늘 더딘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느새 바꿔져있다. 이런 것들이 사실 기적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4개월여가 지난 지금 난 기적이나 다름없다. 논문을 이해하고 논문쓰기 논리사고는 거의 대부분 회복되었으니 놀랍기만 하다. 말하기와 눈 회복이 더 남아있지만 그저 불편할 뿐이다. 유창한 발표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더 노력하면 그뿐. 

생각하면 나는 처음부터 흙수저였다. 늘 모토가 있지 않은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나는 지금도 흙수저이고 아직도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무것도 아니다. 절망도 그저 사치일 뿐. 겨울이 아무리 혹독해도 눈 덮인 속 보리의 씨앗이 버티는 것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 이 화창한 봄날 그래도 기어코 봄은 온다. 아무리 시련이 있어도 기어코 봄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