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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신뢰 <2014.03.20 22:49:44 >

  • 작성자이영희
  • 등록일2014-06-26
  • 조회수1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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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벌써 육갑이 다 되어 가는데 사는 것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 편해지고 마음에서 내려놓는 것이 많을 것 같지만 세상살이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내가 가진 것 중 불필요한 것을 빼고 꼭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하려는 습성이 생겼다. 늘 일의 가치를 따지게 되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피하려는 습성이 생겼다. 이런 나의 습성이 내가 가치있게 살 게 한다고 믿지만 세상살이가 꼭 그렇지 많은 않다. 댓가가 따른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연구소가 시작되면서 시간을 관리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지 않으면 내가 연구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따라서 불필요한 회의 시간을 줄이고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줄이려 애썼다. 결괴적으로 연구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이 생겨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피해를 보는 일이 빈번해졌다. 세상은 어차피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산다. 교감이 없으면 서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이해하기가 어려우면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관계에서 신뢰가 깨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관계가 나빠져 급기야 서로 불신하고 오해하고 반목을 하게 된다. 이쯤되면 이 관계를 회복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이것이 인생인가보다.

학생들과 술자리하는 시간도 줄다보니 학생들도 점차 서먹해하는 것 같다. 나를 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교수들도 같이 하는 시간이 줄게되니 오해가 생기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교수를 만나기를 피하려는 것처럼 오해하게 되고 대화로 풀어야 될 상황에도 별다른 설명없이 내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여 독선이 지나치다는 말을 듣는다. 서로간의 효율을 중시하여 시간을 아끼려는 배려가 결국은 독이 되어 돌아온다. 집에서야 내가 그렇게 행동해도 나를 이해하고 내가 어떤 결정을 해도 믿고 따른다. 하지만 밖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게 신뢰가 깨진 경우가 주위에 생겨나고 그런 일 때문에 요즈음은 잠을 잘 자지 못하니 더 이상 효율만을 추구해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끼리 대화는 시간이 필요하다. 귀찮아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 같다. 연구 효율이 가장 중요한 내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래야 될 것 같다. 신뢰가 깨졌을 때 내가 버텨낼 힘이 없다. 나의 아킬레스 건이다. 민주주의는 의사 결정과정이 소모적인 측면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이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일 것이다. 나는 이런 면에서 민주주의적인 생각보다는 효율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적인 생각이 강하다. 나의 단점이다. 하나 고쳐야 한다. 연구소 평가도 중요하지만 같이 가는 생각이 중요하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공유하는 것. 내게는 비효율적이고 힘든 일이지만 필요악이다. 생각을 바꾸자. 그래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봄이 온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온다. 그렇게 언 눈 녹듯이 사람들의 오해도 다 풀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무리일까. 이 나이에도 욕심이 부려진다. 괜한 욕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