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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7-11-24
  • 조회수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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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에 출발하여 오늘이 화요일이니 심천에 도착한지 벌써 4일째다. 조금 있으면 아침먹고 출발한다. 중국 일정치고는 너무 빡빡한 일정이다. 쉴 틈이 없다. 일요일 저녁 민속촌에 가서 쇼를 본 것 이외는 그냥 학회 참석이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에너지 분야의 중국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는 정말 눈부시다. 올 때마다 늘 새롭다. 모두 젊은 친구들이다. 이런 발전은 중국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까지 대대적으로 에너지 연구를 지원한 이유가 크다. 못하는 사람도 널려있지만 잘하는 그룹도 많고 우리의 경쟁상대는 잘하는 사람들이다. 연구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리더가 되려면 정말 잘해야 한다. 에너지에 대한 연구가 우리 그룹 내에서 미진하기는 하지만 자극이 된 시간들이었다. 리튬설퍼 바테리 분야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쉽게 실용화가 될 것 같지 않다. 우리 구조를 변형시켜 shuttling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대칭 슈퍼캡 분야의 발전이 미진하다. 과연 이 접근이 혁신적일지 의문스럽다. 어느 결과도 보통 슈퍼캡보다 좋지 않다. 거기에 자가방전 이슈는 또 다른 의문이다. 전체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난주는 우울한 한 주였지만 며칠을 집중해 에너지를 생각하다보니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짜증이 많이 났고 쉽게 화도 냈었다. 연구에 대한 조바심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평가를 대비해 그동안 노력한 결과들이 가시화가 되어야 하는데 논문 출간이 늦어져서 오는 조바심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조심해야 한다. 나의 조바심이 다른 연구자들에게 큰 압박으로 갈 수 있으니까... 우리 모두 연구가 좋아서 선택한 특별한 사람들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지적인 유희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나는 리더로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결과에 조바심내면 안된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길게 보자...

그러나 나의 이런 우울증은 단순히 그런 것만이 아니다. 요즘 들어 실험실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발전하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즐겁지만 그렇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내 탓이라는 자책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가슴이 막막해진다. 모두 들어올 때는 잘 하리라고 마음먹고 들어왔지만 연구라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다보니 낙심할 때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대처하는 방법들이 너무 서투르다. 어떻게 하면 모두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물리전공자가 아니어서 적응이 더 어려울까? 아니 꼭 그것만은 아니다. 물리 전공자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개인 차이이다. 절박함의 부족만이 아니다. 능력의 부족함도 아니다. 성격의 차이일까? 절망감을 이겨 내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내가 대학원 다닐 때는 어땠을까? 미국 처음가서 첫 시험을 망치고 실망한 것이 기억난다. 이러면 안된다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한 기억이 난다. 세 가지 완전히 다른 연구주제를 한꺼번에 다 해보겠다고 덤벼서 결국 하나를 끝내지 못하고 졸업하며 나머지 하나를 엄청 고민한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상전이 근처에서 관련된 물성이 발산하는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왜 발산하는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갖고 있는 온갖 생각의 오류 가능성을 검토하는 일을 반복했었다. 논리가 잘못되었는지 프로그램이 잘못되었는지 꿈속에서조차 싸우고 있었다. 그 때 난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런데 절망한 기억이 안난다. 안되는 것과 씨름하던 기억들.. 교수한테 갖고 가도 별 수가 없었던 기억들... 절망보다는 그 문제와 씨름한 기억만 남아있다. 그래도 연연해하지 않고 포기하고 졸업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이었다. 아니 운이 좋았다...

지금의 나는 나이가 든 경험이 쌓인 연구자다. 그런데 난 과연 절망에서 자유로울까? 내가 진행하고 있는 모든 연구 주제가 재미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쉬운 대상은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한다. 매일 학생들과 토의하고 고민한다. 머릿속은 아직도 늘 연구주제로 가득차 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또 연구가 진척이 안 될때 실망도 일쑤다. 또 자신감도 없어질 때도 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아 나이에 무슨... 할 수도 있지만 나도 여전히 젊은 사람들과 같은 고민을 한다. 아니 오히려 젊을 때에 비해 실망감이 더 많아졌다. 기대치도 많아진 탓일까... 그러나 정작 나를 절망시키는 것은 연구가 아니다. 연구는 안될 수도 있다. 아니 연구란 것이 내가 목표로 한 것이 되지 않더라도 그냥 낭비한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그 과정을 통해 배운다. 목표를 수정해 논문을 쓸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연구는 우리에게 반드시 땀의 댓가를 준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 사기치지 않는다. 주식처럼 잘못 투자하면 빵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은 할만하다. 정직하다. 정작 나를 절망시키는 것은 학생들이다. 많은 학생들이 터덕거리고 있다. 연구란 것이 원래 잘 안되는 것이지만 이것을 받아들이기에는 학생들이 아직 경험이 적은 탓일까.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이런 어려움을 극복했을까. 

사람에겐 늘 부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발전한 것은 어찌보면 이런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때문이 아닐까? 연구하면 늘 찾아오는 이런 절망감들은 어찌보면 연구자들이 극복해야하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나도 피할 수 없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간이 단지 짧아질 뿐이다. 대학원 때는 그런 시간이 올 때면 스스로 아 지금 내가 이렇게 절망에 빠질 시간이 없다. 이 시간에 더 집중하고 더 과정을 점검하고 또 들여다보고 연구 자체에 더 사간을 투자해야한다고 다짐했다. 교수가 되어서 이런 절망감이 올 때면 난 아무데나 그냥 떠났다. 정처없이 기차를 타고 아무데가 갔다가 마음이 정리되면 돌아왔다. 차가 있을 때는 운전하고 아무데가 가면 마음이 정리되었다. 나한테는 운전하는 시간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내 스스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들인 것이다. 지금은 학회 출장을 가는 것이 나한테는 생각을 정리하고 절망감을 극복하는 시간들이다. 혼자 있는 시간들이 필요하고 때로는 사람들과 만나 연구에 대해 토의하고 서로 어려운 점도 상의하고 술도 마시다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때로는 나를 위해 그렇게 풀어주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좋은 연구자란 결국은 어떻게 이런 시간들을 어떻게 단기간에 극복하고 시간을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절망감 중에는 난 연구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잘 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 중 과연 난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이럴때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정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그만둘 수도 있다. 아직도 젊으니 다른 분야서도 기회는 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여기서 능력이 없어 잘하지 못하면 다른 분야에서는 잘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능력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어디를 가더라도 경쟁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거기에는 사실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며 살고 있다. 에너지 분야 연구자가 다른 분야에 비해 더 많은 이유는 이 분야 연구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여기서 포기하고 다른 일을 선택하면 상황이 더 쉬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마도 더 열심히 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산다는 것이 생각하면 참으로 어렵다. 적어도 나한테는... 마치 왜 사느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라는 말처럼 답이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처럼 살아야하는 숙명...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하느냐 희망을 갖고 한걸음씩 앞으로 갈 것인가는 모두 우리 스스로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