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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쟁이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7-09-04
  • 조회수5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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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60이 넘도록 연구만 하고 살았으니 아니 적어도 그렇게 자부하고 살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연구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연구란 어떤 연구였고 내가 지금하고 있는 연구는 어떤 연구인가 생각하게 된다. 

왜 연구할까? 아니 연구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새로운 지식 창출이다. 현재 인류가 갖고 있는 지식의 영역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려는 노력이 연구라 할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원동력이 인간이 갖고 있는 호기심이고 그 호기심을 만족시켜 온 결과가 연구행위고 그것이 인류를 지금까지 발전시켰고 또 앞으로도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실험실을 떠나서, 살면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행위 혹은 노력 자체가 광의적으로는 연구인 셈이다. 왜 연구할까? 그러고 보면 인류가 살기위한 궁극적인 노력이니 당연히 연구를 해야하는 당위성이 있다. 언젠가 지구도 태양계도 살 수 없는 곳이 될테니 그때까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 때 가서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먹을 것이 궁하면 이런 미래적인 눈도 다 현실에 묻히게 된다. 그래서 늘 연구예산이 제일순위 삭감대상이고 개발도상국에서는 감히 언감생심이다. 우리도 이제 먹고 살만해지니까 연구란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있을까? 연구 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올바른 과학적인 질문을 하고 것과 동일하다. 문제의 본질을 피하지 않고 정면공격하는 질문이 우선이다. 이번 보스톤 발리트로닉스 워크샆에선 바로 이런 문제를 직접 파고드는 워크샆이었다. 단순한 과학적인 질문을 답하는 지식 전달의 학회가 아니라 이 문제를 접해본 사람들이 모여 이 분야의 이슈가 무엇인지, 본질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들어보는 작은 워크샆이었다. 이 분야를 잘 모르고 배우고자 갔던 나에게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 새로운 분야가 예상되면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난번 BP 워크샆보다는 더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탐구였다. 모두 계급장 떼고 토론하는 시간들이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제까지 난 너무 안이한 연구를 해 온 것 같다. 아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구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난 정말 지식의 확장을 위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는가? 아니 그러기에는 난 아무것도 없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니 핑계다. 논문을 읽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우선 내가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제한은 오로지 내가 갖고 있는 resource를 근거했다.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전 세계의 resource를 근거로 생각했어야 했다. 연구는 어디 가서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과학적인 질문이 우리 지식의 어떤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인지 아니면 가지의 가지 중 작은 문제인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그것이 기초적인 문제인지 응용문제인지 관계없다. 그런 관점에서 고민했어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변도 있다. 그렇게 되면 논문 쓰기가 힘들고 그러면 소위 대학에서 정년보장받지 못하게 되고 쫓겨나기 쉽다. 과연 그럴까. 지금 젊은 교수들이 이런 질문조차 포기하고 연구 논문쓰기에 급급한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좋은 연구 환경에 있으면서 그런 질문을 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실망시럽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우리 때는 그렇게 해도 버텼지만 앞으로는 납세자들이 더욱 거칠게 이런 근본적인 것에 대한 도전의 가치를 따지게 될 것이다. 정작 연구자라는 자격을 갖추려면 말이다. 대학에서 교수로서 연구자의 의무를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교육을 집중하는 대학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성대에서는 안된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면 얼마나 좋을까...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과학적인 질문을 도출해야 한다. 질문에 답을 못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화두를 끌어내야 한다. 좋은 연구자란 결국 좋은 과학적인 질문을 도출해내는 사람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구현한 연구를 재연하는 것은 진정한 연구가 아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가능하지 않다면 국가적인 관점에서는 이것을 갖추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그것은 어찌보면 기술분야에 속한다.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기 위해 기존의 개념을 반복하여 새로운 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물리학 인과율이다. 예를 들어 상대성이 이론이 아무리 멋있어도 기존 뉴톤 역학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롭지 않으면 그것은 어찌보면 연구가 아니다. 좋은 저널에서 늘 요구하는 것이 신규성이다. 새롭더라도 그것이 가지중 가지의 끝이라면 새로운 분야를 확장시킬 수 없다. 그러니 impact는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말 대신 쉽게 말하면 연구란 뻥까는 일이다. 누가 봐도 잘 안 될 것 같은 공갈을 일단 치는 것이 연구다. 말하자면 연구를 잘하는 사람은 일단 뻥쟁이가 되어야 한다. 사기꾼과 다른 점은 사기꾼은 처음부터 그 일을 하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고 연구 뻥쟁이는 그렇게 말해놓고 심각하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잘 안되는 것이 연구의 본질인지라 뻥쟁이가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린 이런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비록 말대로 실현을 못했다 했더라도 우리의 노력한 흔적이 우리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것이 실험 노트에 나타나고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알아야하고 안 다음에는 바로 잊어야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니 좋은 연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생각의 틀에 메이지 않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논리 연습을 하되 상상력을 발휘하여 모래성을 수도 없이 쌓고 또 쌓아야 한다. 우리 모두 뻥쟁이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