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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7-09-04
  • 조회수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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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등반은 매년 실험실 행사였지만 그 전 산장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 사람이 많다는 이유, 또 연구소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등으로 지난 3년 동안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리산 등반은 모든 사람들에게 추억 것만은 사실이어서 졸업생들이 오히려 가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올해는 지리산 등반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실험실 짱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간 경험이 없어 준비하는데 애를 먹었다. 사실 실험실 생활은 바빠서 같이 지내는 시간은 길어도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지리산 등반은 단순한 등반이라기보다 연구소 멤버들이 서로를 이해하기에 좋은 기회라 팀리더들 모두 합류하라로 했는데 중간에 이런 저런 이유로 모두 빠지면서 스케줄에 혼란이 생겨 영조가 애를 먹었다. 대충하면 좋으련만 영조의 성격상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아마도 팀리더들은 나의 이런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더가 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단순히 과학적인 선험지식으로 리더가 될 수 없다.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과학적인 공동연구도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으면 못하는 경우가 바로 그 이유이다. 

실험실 아이들이야 처음 같이 가는 산행이라 들떠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실 걱정이 있었다. 최근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단순히 걷기만 해도 식도염 때문에  쉬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이야 아직도 젊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다. 걷기가 어려울거라고 어찌 상상했을까.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말도 않되는 법. 도전하기도 했다. 아직도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잘 모른다. 해보면 알 것이다. 신발도 3년전 다 달아 다시 샀다. 짐은 최소한으로 챙겼다. 음식등 무거운 짐은 모두 학생들 차지였다. 나 스스로에 대한 도발...

예전처럼 버스로 음정마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김밥인데 오지 않은 사람이 많아 생각보다 김밥이 많이 남아 모두 처리하다보니 나도 과식했다. 그 과식의 효과는 산행을 시작하다마자 나타났다. 언덕길을 걷기 시작하지마자 숨이 막혔다. 한 발자국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국은 뒤에 쳐져 나하고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영조가 뒤에 남아 걱정하며 같이 갔지만 그 숨막힘은 결국 소화가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결국 오후 산행의 절반을 고생한 셈이었다. 첫 번째 레슨 과식은 금물.

일찍 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아이들은 벌써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 년만에 왔는데 산장은 현대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숙소도 칸막이로 나뉘어 있어 좀 더 아늑했고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변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느낌이다. 산에서 먹는 밥은 맛있다. 모두를 가져온 고기 구워먹느라 난리다. 작은 반찬하나도 소중하다. 잠도 비교적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출발할때까지 몸 상태가 아주 좋았다. 선비샘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 문제없이 지리산 풍광을 즐기며 잘 갔다. 지리산의 특징은 산 꼭대기에도 나무가 무성하고 들꽃이 자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어머니산이라고 했을까. 사실 음정에서 출발하는 지리산 산행은 지리산 산행코스에서도 제일 쉬운 코스다. 그렇게 나도 아무 문제없이 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비샘에 도착하니 시원한 물에 반하여 몽땅 마시고 쉬었다. 그러나 이렇게 마신 물이 회근이 되어 그 다음부터 점심때까지 또 고생했다. 마신 물이 역류되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세석산장에 도달할 때까지 이 증세가 계속되어 점심때 세석산장에 도달할 때는 이미 몸이 파죽이 되어 있었다. 라면을 먹기도 힘들었다. 점심을 먹고 고개를 올라 갈 때는 정말 한발자국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무엇이 원인인지 몰랐다. 대략 절반쯤 갔을 때 영조가 물을 마시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일리가 있어 그때부터는 물로 입을 행구기만 했는데 다행스럽게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나머지 절반 산행은 또 즐거운 산행이 되었다. 곳곳의 지리산 풍관을 즐길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왜 전에 이런 간단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운동할 때 올라온 것도 마신 물 때문이리라. 코치는 물을 마셔야한다고 늘 주장하지만 내 경우에는 예외 사항인 셈이다. 이제는 운동할 때도 올라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터득한 셈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 비싼 수업료가 필요하다. 하루동안 계속 산이 역류되어 올라오는 통에 목이 많이 상한 것 같다. 목소리가 변했다. 둘째 레슨 운동할 때 물 안마시기.

장터목은 전과 하나도 변한 것 같지 않았다. 취사장이 옆 독립건물로 옮겨간 것 이외에는 재래식 화장실도 그대로이고 주위 환경도 지저분하다. 조선시대부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장터로 활용되어 온 이곳이 역사 그대로 재래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다른 산장에 비해 천왕봉 밑에 위치한 장소라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올텐데 잘 갖추어 놓을 수도 있으련만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참 알 수 없다. 같은 지리산 산장인데도 정책이 다른가보다. 저녁은 부대찌개란다. 원래 먹지않는 메뉴지만 세상에 그럼 맛이 없다. 산에서 먹는 맛이라서 그럴까... 국물 한 숫갈에 눈이 번쩍 떠지는 맛이다. 난 왜 부대찌개를 안 먹었을까... 아마도 미군들이 들어와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선입관 때문일 것이다... 밤에 잠이 안 와 나와 보니 늘 바람 불고 날씨가 수시로 변하는 낮과는 달리 정말 고요한 저녁이었다. 바람 한점없고 춥지도 않은 밤공기... 하늘에는 구름이 조금씩 널려있고 그 사이 별들이 쏟아진다. 은하수도 보인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본 쏟아지는 별빛, 하늘 가득한 은하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즈녁한 지리산 분위기가 참 좋다. 언제 또 이런 풍광을 볼 수 있을까. 거기에 산중턱에 걸려있는 구름으로 백무동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또한 장관이다. 이래서 지리산이 좋다는 것일까.

다음날 모두 천왕봉에 올라갔지만 난 엄두를 못 내고 늦게까지 잤다. 우리조는 부지런해 식탁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총알같이 내려왔다. 사람은 많고 식탁자리는 제한되어 있으니 이 또한 경쟁이다. 아침을 먹고 백무동을 향해 내려오는 길은 정말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총 길이는 6 킬로 남짓이지만 끝도 없는 돌 계단을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 길을 올라오는 사람들도 대단하다. 이 길은 지리산 처음 오던 날 텐트메고 올라오던 길이다. 그때는 힘들었어도 교수 막되어 올라오던 젊었을 때라 버텼을테지만 지금은 내려가기조차 어려운 길이다. 내리막 길은 다리가 풀릴 수도 있어 위험하다. 내려오다보니 같이 산행하던 진도고 학생 하나가 다리를 다쳐 헬리콥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험이 적어 벌어진 일이다. 중간에 목이 말라 물을 조금 마셨더니 또 일시 역류현상이 나타났지만 그래도 버텼다. 

지리산 산행은 정말 지루함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준다. 우리를 겸손하게 내려준다. 사는 것도 많은 시간들이 이런 지루함의 연속이다.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 나에게는 언제 커서 사람답게 사는가하는 질문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어른 된다는 시간이 너무 까마득해 정말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나에겐 너무나 먼 꿈같은 것이었다. 가끔은 연구해 논문쓰고 출간하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연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결과를 너무 기다린 탓일 것이다. 지리산 산행 자체를 즐기고 주위의 풍광을 즐겼다면 그런 지루함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사실 백무동을 내려오는 중 우리를 즐겁게 하는 과정 하나가 있었다. 중간 중간 계곡의 청정한 물을 즐기는 것이다. 중간에 작은 폭포하나가 있어 그 폭포물에 온 몸을 맡기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불행히도 물이 말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그런 구간이 없었다. 그 사실을 청소하는 아저씨로부터 들은 순간 피로감이 밀려왔다. 아래까지 내려오는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러나 그런 무거운 몸도 점심 후 계곡의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온몸이 가뿐해졌다. 옷 입은 채로 몰 속에서 수영하고 나니 피로가 싹 가시고 저녁 늦게 졸업생들하고 수다 떨었다. 이제 한참 일할 나이들이라 쌓이는 스트레스도 상당한 모양이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이 스트레스가 더 심할 것이다. 모처럼의 하소연 속에 삶의 애환이 묻어 있다. 모두가 거쳐야하는 과정이다. 이튼날 새벽 일어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칠 때까지는 잘 버텼는데 집에 도착하여 그날 저녁 뻗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아프다. 허리가 아파  이틈날도 계속 잤다. 다른 때 같으면 그리 오래 자면 허리가 아파 잘 수가 없는데 이번에는 정말 이틀동안 잠만 잤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왜 하필 힘든 지리산을 올라가냐고. 지리산은 다른 산과 달리 산의 풍광이 남다르다. 산 능성이 능성이 연결되는 산의 모습은 우리네 삶의 굴곡과 같다. 내게는 늘 정겨운 모습이다. 산 능성이에는 언제나 이름 모를 꽃들이 있다. 어느 산 꼭대기에 이렇게 꽃들이 많을까. 세석 산장은 봄 철쭉 축재를 벌인다. 그리고 물이 있다. 그래서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지리산에 올까. 지리산은 코스에 따라 다양하게 산행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건 지루함이라는 단어가 필요한 코스가 있다. 이 곳에서는 그야말로 겸손해진다. 여수가서 돈 자랑 말고, 순천에 가서 인물자랑하지 말라는 말처럼, 지리산에서는 힘 자랑할 수 없다. 난 그래서 좋다.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곳... 내 휴식처 같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