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Search

행복할 때와 우울할 때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7-06-19
  • 조회수6029
  • 파일
내용보기

연구자로서 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교수로서 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교수된지 만 30년이 넘었으니 나도 늙을 만큼 늙었다. 흔히 말하는 노땅이다. 아파트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한다.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이제 난 경계대상이 되지 않다는 의미일거다. 몸도 전과 같이 밤늦게 일하도록 허락되지 않으니 늙은 것은 사실이다. 

늙은만큼 난 정말 성숙한 것일까. 아닌 것 같다. 내 마음속엔 아직도 미움, 서운함, 슬픔, 우울, 실망, 기대, 화, 행복, 도전, 발전, 노력, 새로움, 발견, 가치, 정의, 사랑등의 키워드가 가득차 있다. 노인네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다. 내 속의 이런 욕망의 키워드를 잠재울 절제가 아직 나한테는 없다. 그러니 매일 하루가 고단하다. 때론 꿈속에서도 시달린다. 희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절망과 하루를 마감할 때도 있다. 때론 마음이 지쳐 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때론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때문에 새벽잠 못이루는 밤도 있다. 이런 내가 정상일까. 아니 난 행복한 걸까...

IBS를 시작하기 전에 비해 난 행복할까. 젊었을 때 교수가 막되어 대학원생 몇 명 데리고 잘 되지 않는 아니 연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의욕 하나로 덤볐을 때에 비해 지금 나는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연구가 무엇인지도 알고 또 무엇이 중요한지도 알고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도 다 느껴진다. 또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것도 갖추고 있다. 남들이 볼 때 감히 상상도 못한 것을 갖추고 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나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내 마음은 처음 시작한 그때에 비해 더 행복할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욕심일까. 아니면 그때의 어려움은 모두 마음속에서 잊혀지고 좋은 것만 기억에 남아서일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갈등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것으로만 남아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시설도 다 갖추었다.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런 것이 나한테 오히려 짐이 되는걸까. 정말 본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 수를 줄이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사람이 많으면 갈등도 많으니 아마도 행복의 척도에서도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면 정말 줄일 수 있을까. 난 연구자인 동시에 대학의 교수다. 내 철학은 실험실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모두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지금도 이런 나의 태도가 적절한 것일까. 교수로서 이런 의무감과 연구의 효율을 올려야 하는 연구단장의 입장이 모순이 없는 것일까. 

대학원생이 많으니 당연히 일대일 대화가 적다. 거기에다 연구원들과의 토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다보니 학생한테는 기회가 더욱 줄어든다. 기초부터 시작해야하는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수준높은 연구를 강요하다보니 힘들어하는 학생이 많아진다. 연구원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관계를 잘 설정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또 중간에서 힘들어한다. 건강문제로 밤늦게까지 일을 못하니 낮에는 집중해 중요한 일부터 처리해야하고 학생들은 더욱 대화하기가 힘들어지고 나가떨어지는 학생도 많아지는 것 같다. 

매 학기말에는 학생들 디펜스가 있다. 디펜스 한 시간은 그 사람의 성장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교수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학생들이 마무리할 때다. 발표 때 어느새 자랑스런 연구자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 절로 마음이 뿌듯하다. 특히 들어올 때는 어리숙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학생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면 미소가 절로 머금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성서 구절인 ‘시작할 때는 미미하였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말씀처럼 이들도 그렇게 성장하고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라는 느낌을 같이 느낀다고나 할까. 

그러나 세상이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과 별로 다른 것 없이 성장이 멈춘 학생들을 보면 정말 자책감이 든다. 내 탓이다. 내가 시간을 많이 해주지 못한 탓이다... 이번에 디펜스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을 보며 교수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통과하지 못한 학생의 분노가 고스란히 나의 잘못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학생을 이제는 더 이상 못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소를 운영하는 방법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들이 효율적으로 교육 받으며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까. 홍기가 말한 것처럼 자기처럼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으니 이제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한다. 학생을 무작정 받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런 환경을 이용해 자기 최적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 아니면 받을 생각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런 환경의 단점을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할까. 지혜가 필요하다. 

이번 주는 우울하다. 계속 악몽을 꾼다. 내가 잘못했다는 자책감이 나를 다운시키다. 전처럼 술이라도 마실 수 있으면 마시고 잊을 수 있을텐데 그것도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 운동이라도 실컷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다음주 학회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이미 그것도 포기해 놓은 상황이다. 그것도 조금이라도 학회 참석기간을 줄여 일하고자 했던 것인데... 도망칠 곳이 없다.... 이러는 난 아직도 난 어린아이다. 도망쳐 아무도 모르는 동굴 안에 숨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