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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불평등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7-02-16
  • 조회수5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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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 우리에게 큰 명절이다. 요즘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가족이 함께 한 도시에 사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고 그래서 명절은 우리에게 더욱 큰 의미가 있다. 모처럼 가족이 모이는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이 모여 그간 쌓였던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고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피곤한 일도 생긴다. 제대로 직장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몸을 사리고, 혼기를 놓친 젊은 처자들은 스트레스 받는 때이고, 여자들은 음식 준비로 몸살을 앓는다. 이래저래 명절은 가족을 확인하는 즐거운 자리이자 또한 우리의 아킬레스 건이다. 

 어느 가족이건 구성원이 모두 다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란 우리 가족은 그 당시 재정 형편이 나빠 가족 중 의도치 않게 희생을 당한 형제도 있다. 특히 첫째 딸은 그 당시 살림 밑천이라 불리울 정도로 가족에서 희생을 해야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누이가 그런 예이다. 다섯 남매중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가족을 돌봐야 했다. 어렸을 때 찟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누이는 공장생활을 하면서 우리 가족을 돌봤다. 가난한 집에서 네명의 동생을 돌보는 것이 절망적이기도 했겠지만 누이는 우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절망적인 어머니도 누이가 다녀가면 얼굴에 생기가 돋았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도 누이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다. 누이는 가족이 모든 일의 우선이었다. 본인의 고생은 뒷전이었다. 가족 중 가장 부지런하고 누구보다 똑똑한 누이였다. 그러다보니 먼저 철들었고 희생을 받아들였다. 장남인 나는 그런 면에서 무지했고 철이 나중에 든 덕분에 이 모든 것 무시하고 내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런 누이는 결혼을 해도 우리가 우선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워도 항상 시집이 걸려 우리를 돕곤 했다. 이제는 누이 자식도 장성하여 직장도 갖고 있고 손주도 보고 모두 살만 한데, 이런 습관이 베어버린 누이에겐 본인을 위한 삶이 없었다. 이젠 나이가 육순 중반인데도.. 
 
  이제 홀로 계신 노모를 돌보는 일이 또한 누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큰 아들인 나는 마누라의 눈치 보느라 엄마를 모신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 당연히 본인의 희생이 몸에 베어 있는 누나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방을 따로 마련하고 식사만 같이한다 하더라도 늘 같이 지내는 누나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엄마도 딸은 대하기가 편하니 늘 같이 부딪히기 마련이다. 거기에서 오는 갈등도 모두 엄마니까 누나가 감당해야한다. 그러나 엄마는 누이가 자기를 함부로 대한다고 또 불평하신다. 누이는 누이대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스트레스를 엄마한테 곧바로 풀어낸다. 원래가 다혈질의 성격인데 이제는 이런 부분이 더 악화되어 버렸다.  

 생각하면 누이가 가족 내에 이 모든 희생을 감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머지 형제들은 이 문제에서 벗어나 편하게 살고 있다. 누나 한 사람의 희생으로 그나마 제대로 교육받고 사람노릇하며 살고 있다. 이제 모두 결혼해서 살지만 며느리들은 이런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또 그래서도 안 되는 현실이다. 이번 명절동안 이런 누나의 삶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그것이 어디 내가 용돈을 드린다고 해소될까. 조금 살게 된 지금도 누나의 이런 삶의 태도는 몸에 베어 있다. 그런데 젊었을 때는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건강이 나빠지니 버티기가 힘드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고민 끝에 누나한테 문자를 보내 이제부터는 누나를 위해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제까지 가족을 위해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스스로를 위해 살아달라고... 매형한테도 부탁하고 엄마한테도 부탁하고... 어려운 과정이었만 모두 이해하고 누나도 받아들였다. 모두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니 모두가 웃을 수 있었다. 이번 명절은 얽힌 메듭을 푼 것 같아 모두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었다. 가족이 우리에게 힘이 되는 명절이었다. 

 한 가족내에서도 이렇게 불평등이 만드는 불협화음이 있는데 우리네 자본주의 사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병폐는 불평등이다. 그런데 이 불평등은 해소하지 않으면 갈등이 깊어지고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가진 자는 사회의 또 다른 계층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니 결자해지로 사회에 환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갈등이 풀어지고 살만한 사회가 된다. 자기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 불평등이 어디에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