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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 작성자Center for Integrated Nanostruture Physics
  • 등록일2016-12-05
  • 조회수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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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시위를 마지막으로 했던 기억이...  

 아마도 1987년 전두환 정권때 거리로 나가 학생들 최루탄 방패막이로 맨 앞에 섰던 기억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 때 전주 풍남문 거리가 가장 큰 도로인데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경찰은 최류탄을 들고 기세등등해 있었지만 시민들은 학생들 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심지어 경찰들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주었으니 민심이 등을 돌려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기세등등한 경찰들도 학생과 합세했으니 갈 때까지 다 간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 정권도 포기하고 민정이양을 선언했지만 그것도 꼼수였다. 그 친구 노태우를 내세웠으니 말이다. 그나마 제대하고 출마했으니 눈감고 아옹하는 것이었지만 그나마 국민들이 수긍했다(??).  

 덕현이 화경이와 함께 촛불시위를 참가하기로 나선 내 마음이 편할리 없다. 지지난주에 걸린 감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추운 곳에 나가 몇 시간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얄팍한 계산이지 가야한다는 의무감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내가 교수이기 이전에 대한만국 국민의 한사람이라는 것.. 난 애국자가 아닌데도 이 마음만은 거스르기 힘들었다. 가서 국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옷을 단단히 입었는데 문제가 전철 안이 너무 더웠다. 실험실에서 가기로 조인한 학생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밀리는 전철을 탄 것도 오랜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전철을 탄 것이다. 모두 분위기가 우울하다. 말이 없다... 알 것 같았다. 그 기분을.. 특히 우리 세대는 박정희만 보아왔다. 독재가 쓸고 간 그 쓴 맛을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사이 발전했다고 믿었는데 이제 또 반복이다 생각하니 실망을 넘어 절망감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이민 갈 거라고 스스로 마음먹었던 그 날들이 스쳐간다. 부끄러운 나의 모습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조차 본인에게 일부 기인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기대했겠지만 난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 흉을 보지만 때로는 지도교수를 어쩔 수 없이 닮는다. 잘못된 것조차도....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우울하다. 그런 역사의 오류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고 그 댓가를 치르고 있으니까.. 그것이 또 대를 이을까봐 두렵다. 

 시청 앞은 사람이 너무 많을 것을 예상하여 서울역에서 내렸다. 전에 고등학교 졸업후 발령지가 서울역이니 내가 지리가 제일 밝은 편이다. 아들조차도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시청을 향해 남대문을 지나 걷노라니 이미 사람들의 행렬이 인도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시청 앞에 도달하자 이내 덕수궁 앞은 거리가 통제되고 사람들로 거리가 채워지기 시작해 앞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지 신기하다. 남녀노소 그야말로 보통의 사람들이다. 가족 친구 아니 가족단위가 더 보였다. 30년 전에는 가족단위는 없었다. 폭력이 없어진 탓이리라. 그렇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 하나다. 정치는 역사를 통해 개선되지 않았지만 민중은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평화시위가 언제까지 가능할까. 정부가 지금처럼 꼼수를 두고 계속 국민들을 속여도 가능한 일일까... 걱정이다. 모두 자리에 앉아 집회가 시작되었다. 누구하나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모두 알아서 자리를 정리한다. 외치는 구호가 모두 뼈를 치르는 정곡이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하라. 박근해 하야하라. 구속하라. 국정교과서 중단하라. 김기태 구속하라. 부패기업 구속하라. 세월호 7시간 규명하라. 새누리당 해체하라. 지금 이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들에겐 보수도 진보도 없다. 정의 구현 자체가 초점이다. 무엇이 핵심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이제는 정치권에서 아무리 꼼수를 써도 통하지 않는다. 무섭다. 또 다른 젊은 교수도 날 알아보고 인사한다. 식구들과 나왔단다. 김 교수도 가족들과 나와서 문자를 보내왔다. 모두가 의무감을 갖고 나온 것이다.  

 시청 앞 대로에 앉아 사방을 살펴보니 참 새롭게 느껴졌다. 이 거리는 많이 지나 디니는 거리다. 프레스센터도 보이고 프레지던트 호텔도 보인다. 멀리서 청사도 세종문화회관도 보인다. 늘 일이 있어 왔지만 이렇게 길 한가운데서 보지는 못했다. 문득 서울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거리에 늘어선 가게도 사뭇 다르게 정겹게 느껴진다. 서울이 이런 도시였던가... 이 대로를 공원화 시키면 얼마나 아름다운 곳으로 변할까. 상상만해도 즐거웠다. 서울역에서 박물관까지 도로 절반만이라도 막아 공원화시키면 정말 살만한 도시로 변할 것이다. 아니 차를 모두 지하로 보내고 지상을 공원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아파트도 그런 구조니 정말 어린이 낙원이다. 밤늦게 창밖으로 어린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 사람 사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 정치 펴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다. 

 그렇게 9시쯤은 청와대 100 m 앞까지 진격하기로 했다. 움직이면서 보니 그렇게 사람이 곳곳에 많다. 세상에 이렇게 사람 모인 것은 처음 봤다. 골목골목 음식점 찻집 모두 사람이 그득하다. 그렇게 가기를 한참 가다보니 박물관 옆길 청와대쪽 길로 들어갔다. 이 길도 고등학교때 통학길이었다. 아주 짧은 길이었지만 정말 더딘 한걸음씩이었다. 그렇게 간 마지막은 과거 내가 버스타고 지나다니던 꺽음길 마지막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그 이상 갈수는 없었다. 모두들 분개하고 목소릴 높여보지만 과연 그들은 꿈쩍이나 할까. 아무도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믿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민중은 그런 의미에서 힘이 없다.  그 옛날 영국과 비폭력으로 힘겹게 싸웠던 간디의 마음이 이해되지만 한편으로 그도 수많은 무력감과 싸웠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자괴감, 무력감, 절망감, 그도 같이 느끼지 않았을까.  

 정부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이 불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온갖 꼼수를 동원하여 국민을 기만하려한다. 그렇게 시간을 벌여 또 다시 방송을 장악하고 국민을 기만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늑대소년 이야기다. 언젠가 중요한 순간에 진실을 이야기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테니까.  이미 대통령은 늑대소년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이다. 그 지경까지 가면 이 땅에 또 폭력이 난무하고 국민들이 피를 흘릴 것이다. 어떻게 이를 막을 수 있을까... 내가 연구에 몰두할 수 있을까. 그 지경이 되면...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이 땅과 하늘과 어린 아이들 
내일 그들이 열린 가슴으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도록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